동성동본 금혼이란 부계조상이 같은 남녀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서 중국에서는 유사이래 관습적으로 지켜져 왔다.

원래 이풍습은 같은 혈족끼리 혼인하면 불임 또는 유전병 발생가능성이
높다는 우생학적인 이유로 생겼지만 유교적인 전통속에 부계혈통 중심의
가부장제가 확립되면서 더욱 강화됐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예족은 동성불혼이라는
기록이 나오며 고구려나 백제도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신라및 고려시대에는 골품제도와 같은 귀족적 특권을 보존하기
위해 동성근친간에 결혼이 성행했으며 성리학이 도입되고 대명률이 시행된
조선초에야 동성동본 금혼원칙이 강력히 시행됐다.

또한 조상이 같으면 비록 이성동본이나 동성이본이라도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 예를 들면 안동김씨, 안동권씨, 예천권씨 사이, 김해김씨,
김해허씨, 양천허씨 사이, 청주한씨, 행주기씨, 태원선우씨 사이, 그리고
문화유씨, 연안차씨 등의 경우다.

이러한 풍습은 조선시대이후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집성촌 또는
동족마을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

가문이 사회활동의 기반이었던 봉건사회풍토에서 때로는 지방수령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치조직인 "사구회"가 집성촌을 통치했을 정도로
유교적인 조상숭배사상에 바탕을 둔 혈연조직과 관습법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식민지및 6.25전쟁으로 인한 인구이동및 봉건사회붕괴,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동족의식약화 등으로 동성동본간에 혼인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1960년부터 시행된 민법의 동성동본 금혼규정에 대해
찬반양론이 분분했다.

그동안 사법당국은 78년과 88년, 그리고 96년에 각각 1년동안 한시적으로
혼인신고를 받아줬다.

하지만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규정에 대한 비판은
계속됐으며 김해김씨만 3백80만명이나 되는 등 시대상황도 크게 변했다.

드디어 헌법재판소는 지난 16일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한 민접 제809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이로써 2만쌍에서 최고 30만쌍에 이르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들이
이날이후 혼인신고를 할수 있게 됐다.

다만 8촌이내의 친인척 관계에 있는 사람들간의 혼인무효를 규정한 민법
제815조의 효력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