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구양수가 쓴 "붕당론"이란 글이 있다.

이 글에서 그는 붕당을 군자당과 소인당의 둘로 나누어 설명한다.

공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임을 군자당, 사리도모를 일삼는 자들의
모임을 소인당이라고 정의하고 전자를 진붕, 후자를 위붕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아울러 군주가 진붕을 등용해 그들의 승세를 유지시켜 간다면 올바른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념도 밝혔다.

한편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는 더 적극적인 논리를 폈다.

그는 ''인군위당설''에서 "붕당이 있는 것을 염려할 것이 아니라 그 붕당이
군자당이라면 군주도 그 당에 들어오도록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당시대까지도 정치는 군주 한 사람의 차지라는 인식아래 군주 앞에서
붕당을 이루는 것조차 살아남지 못할 죄로 여겼던 구양수나 주자의 의식이
이처럼 크게 바뀐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이같은 혁신적 붕당론이 조선왕조에 들어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조정에 사림출신의 선비가 등용되는 성종때부터였다.

경상도 사림의 종장으로 추앙받던 김종직이 조정에 들어온 후 그의 제자
들이 잇따라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소인당"으로 몰리기 시작한 훈구대신들이 이들을 "경상도 도당"
이라며 비아냥댔다는 "성종실록"의 기록은 군자당과 소인당의 심각한 대결
양상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해준다.

거듭 이어지는 사화속에서도 사림계가 정치적 우세를 쟁취함에 따라
선조가 즉위한 뒤부터는 붕당론이 정론으로 자리를 굳혀 갔다.

이때부터 영조때까지(16~18세기) 사림정치 시대가 이어졌다.

드디어 선조 8년(1574년) 동인 서인의 붕당이 생기더니, 동인은 다시 남인
북인으로 갈렸다.

숙종때 와서는 서인이 다시 노론 소론으로 분열된다.

그동안 정권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정치적 분쟁은 극심했다.

사람이 주체가 됐던 붕당정치 2백년에 대한 평가는 심하게 엇갈려 있으나
국사학계에서는 근래에 와서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붕당의 대립이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정국을 경색시키거나 파국으로
몰고간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왕권을 견제하고 사림사회의 공론을 정치에
직접 반영시켰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높이 평가되고 있다.

현실관 정치관이 분명하고 대의명분이 뚜렷했던 것이 붕당의 특색으로
조명되기도 한다.

사림의 붕당정치는 왕권의 전횡을 막고 비판세력의 공존을 전제한
이상적인 것이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은 좀 달랐다.

사림정치의 주체였던 붕당들이 공도의 실현을 추구하는 자들의 모임인
진붕이었는지, 사리를 도모하는 자들의 모임인 위붕이었는지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시대가 점차 내려오면서 진붕보다는 위붕의 요소가 많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붕당간의 싸움은 민생문제의 정책대결이었다기 보다는 복상문제 왕자책봉
폐비문제 등 대의명분에만 치중돼 있었고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정권장악에
있었다.

붕당은 또 그 우두머리의 학연 혈연에 의해 구분되고 그것이 저절로
지연과 연결되면서 지역구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것도 결코 진붕의 모습은 아니다.

아마 현대적 의미의 정당이 아닌 붕당의 한계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경상좌도는 퇴계, 경상우도는 남명" "경상도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
"경상도 인재의 반은 진주에 있다"는 등의 말이 전해오듯, 선의로만 해석하기
힘든 지역의식을 조장한 것도 붕당이었다.

그 의식의 원천을 찾아 올라가보면 남명과 퇴계의 사후에 그들의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남인 북인이라는 붕당이 도사리고 있다.

경상좌도 경상우도의 파벌성을 띤 남인과 북인은 정권을 잡을 때마다 서로
철저하게 상대방에 보복했다.

스승들은 같은 동인에 속해 있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요즘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이 과열되면서 사퇴압력설 돈살포설이
나오는가 하면 "영남후보 필승론"까지 등장, 후보마다 합동연설회에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도 서슴지않고 있다.

신한국당의 붕당이 7개나 되는 것은 "자유경선의 멋"으로 보아 넘길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어떤 후보가
나온다 해도 선뜻 표를 찍어줄 생각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야권이 지역연합운동에 나서고 있고, 여권에 나도는 영남정권 재창출론을
미루어 보면 이번 대선은 또다시 망국적 지역주의에 휘말릴 것이 불보듯
뻔하다.

한국에는 현대적 의미의 정당은 없고 붕당만, 그것도 위붕만 설치고
있다는 인상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아직 18세기쯤의 붕당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면 계속 거꾸로만
돌아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두렵기만 하다.

혈연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를 빼놓으면 할 말이 없는 야당의 후보들이나
여당의 경선 후보들을 보면서 정말 야심찬 21세기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를
맞기는 글렀구나 하는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