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시험을 채점하다 보면 웃기는 일들이 많다.

그중 한가지가 4년간 대학을 다닌 응시자들의 한문실력이 엉망이라는
사실이다.

심한 경우는 경제신문에 응시한 수험자가 "경제"를 "경제"라고 쓴 일까지
있다.

이력서에 자기가 다닌 대학교를 제대로 못쓴 예도 있다.

이러다가는 자신의 한자이름마저 못쓰는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우리와는 달리 일본에선 한자복고풍이 불고 있다.

일본한자능력검정시험의 수험자가 최근 5년간 7배나 늘어나 올해는 무려
1백만명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재단법인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에 의해 75년부터 시작된 검정시험은
92년부터 인기가 폭발했다.

수험자가 92년 11만2천명, 93년 22만명, 94년 39만명, 95년 55만명,
96년 80만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출판계의 약삭빠른 상혼도 뒤질세라 이에 가세했다.

문제집이나 해설서등이 쏟아져나와 대형서점에는 한자검정시험관련책들만
진열한 전용코너가 속속 등장했다.

오사카의 어느 서점엔 토플등 영어시험과 맞먹는 1백20종의 한검책들이
응시준비자들의 눈길을 유혹하고 있다.

이처럼 한자검정시험이 붐을 일으키게 된 것은 일본정부가 92년에
한검합격자에게 기능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 발단이다.

이와함께 합격자들에게는 상급학교 진학시험이나 취직시험에서 우대조치가
취해지는 사회현상이 뒤따라 한검은 일약 선망의 코스가 되었다.

어느 여자대학에선 입학생 추천선발에서 2백50점 만점중 준1급이상
합격자에게는 20점을 배점해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과 유사한 사단법인 한국어문회가 생겨 지난 5월
1만4천여명이 시험을 치렀다.

1급에서 7급까지로 구분되어 있으며 준3급과 준6급이 추가되어 있다.

7급은 한자 1백50자 정도, 1급은 3천5백자, 3급은 1천8백자 정도를
습득해야 한다.

이와 때를 같이해 모 언론기관에선 입사시험에 토플 토익성적표와 함께
한자능력검정시험 3급이상의 급수증을 첨부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수천년 우리 어문생활의 바탕이었으면서도 뒷구석으로 떠밀려있던 한자가
복권되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정부의 기능자격부여 여부가 관건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