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님, 안 지켜도 돼요.

나는 강요하지 않아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잘 수는 없을 걸요.

아무리 짐승같은 남자라도 말이죠"

그러면서 그녀는 또 쿡쿡 웃는다.

무척 행복해서 웃는 싱그러운 웃음이다.

"섭하다. 수녀님, 나를 진정 좋아한다면 질투를 하는게 정상일텐데.
안 그래요?"

"나는 지코치를 하늘 같이 믿으니까요. 정신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이니까요. 하하하"

"하긴 영신은 별종이니까.

그래도 남자의 세계는 달라요.

육체는 가끔 아주 뜻밖의 결과로 치닫는 실수도 저지른다는 것을 알아요?
수녀님, 나는 신을 안 믿어요.

그러니까 정신적 사랑도 불완전하다고 믿어요"

"아무리 지코치를 만나고 싶어도 지금은 만날 수가 없어요.

너무 심하게 다쳐서 혼자서 걷지를 못하는걸. 그런 사람두고 자꾸 다른
농담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상냥한 영신의 목소리속에는 어쩔 수 없이 슬픔이 넘실거린다.

"나도 지코치 보고 싶어. 그러나 이런 얼굴로는 아무 데도 못 가요.

그리고 허리도 다쳐서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는걸. 야쿠자처럼 나를
패던걸. 야쿠자는 지코치가 아니고 윤효상이었어"

그녀는 실토를 한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딱한 입장을 그에게 이해시켜야겠다고 결심하고
말한다.

그가 누구와 어울리는 것은 정말 싫다.

"여자를 그렇게 두들기다니 인간도 아니군요.

정상적인 남자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치 사이코 아니야? 유식한 사람중에도 사이코 많대요"

그는 여자에게는 완력을 안 쓰고 살았다.

그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난 원래 남자복이 없나봐. 너무 오래 참고 살아서 차라리 실컷 두들겨
맞고서라도 그에게서 해방되고 싶었어요.

다시는 내앞에 안 보이기를 바랐거든요.

곱게 맞아주었어요.

그도 불행한 남자에요.

그래서 그냥 참고 살려고 했어요"

그들은 전화기를 든채 오래오래 말하고 또 했다.

아무리 말을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다.

못 만나는 동안 그들의 사랑은 새록새록 쌓여 하늘에 이른다.

"왜 나는 가지 못해? 병원에 가고 싶은데"

그는 어리광스레 말한다.

"혹시 윤사장에게 들키면 지코치가 거짓말한게 탄로나요.

그것도 그렇고 아버지와 마주치면 뭐라고 말해요? 이 남자가 나의
애인입니다 할 수도 없고. 내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

"물론 나는 영신씨와 정식으로 결혼할 수는 없는 몸이지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영신을 사랑하는데 나이가 무슨 문제가 돼?"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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