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천 < 서울대 국악과 교수 >


이야기 하나.

작곡하거나 글을 쓰다가 잘 풀리지 않을 때 나는 곧 남대문시장을 다녀보곤
한다.

남대문시장은 내가 다년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의 비교적 넓지 않은 크기에
온갖 상품이 다 모여있고 삶의 활력이 그 속에 넘친다.

시장을 벗어나면 주위에 백화점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해서 좋고, 버스 타고
갔다왔다 하는 사이에 잡다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좋다.

시장 길바닥에까지 수북히 쌓인 물건, 각양각색의 디자인과 색상을 가진
상품들을 보느라면 마음이 저절로 넉넉해진다.

그러면서도 국악상품이 이만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이 항상 가시지
않는다.

향누자에게 있어 국악은 일종의 상품이다.

돈을 주고 사는 거래관계의 상품이 아니라 값을 치르되 정신적 그 무엇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연주할 곡도 상품이고 연주 그 자체는 당연한 상품이다.

이런 상품이 구매력을 갖기 위해 조사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포장하는
등의 마케팅도 국악의 번영을 위해 하지 않으면 않될 일이다.

이야기 둘.

미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근처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희한한 부자소리와 함께 한 떼의 아이들이 어디론지 달음박질치고 있어
그 방향으로 따라간 곳이 체육관이었다.

음악교사인듯한 선생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고 학생들은 손에 잡히는
갖가지 기물을 들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한다.

체육관에 버려진 깡통 병 몽둥이 같은 것들을 들고 치며 제멋대로 리듬을
맞춘다.

피아노는 계속 반복되고 학생들은 음악에 익숙해지는듯 노래하는 선율도
맞아가고 리듬도 박자와 맞아 떨어진다.

어는 정도 음악이 무르익자 선생은 그룹으로 또는 한사람씩 불러내 노래
하고 춤추게 한다.

나머지 학생은 가지고 있던 깡통등을 계속 두드리면서 앞에 나선 동료들을
지원하고 응원한다.

미국의 음악수업이 이런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의 음악시간은 다른 수업과 마찬가지도 떠들지 말아야 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이것저것 배워야할 지식들을 들은 다음 선생님의 선창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기를 배운다.

이러는 중에도 어디를 어떻게 불러야 한다거니, 어떻게 표현해야 한다거니
하면서 주의를 계속 듣고 교과서가 지시한 전형적 노래가 될때까지 부른다.

여기에는 감흥이나 느낌같은 감성보다 노래와 관계된 여러지식이 우선하고
노래도 개성이 수반된 표현보다 형식과 전형에 맞추어야 하는 몰개성화
학습방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앞에서 두 이야기를 한 것은 이야기의 내용이 국악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예술계를 일별하면 서양음악에 비해 국악시장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것을 쉽게 인지할수 있다.

빈약한 국악시장을 두고 혹자는 사회의 몰이해니, 지원부족이니 하면서
그 탓을 사회에 돌리기도 한다.

탓이라고 말한다면 남의 탓일까.

남의 탓으로 돌리기전에 남의 내탓으로 돌리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싶다.

국악의 행위자는 남이 아니고 국악인 자신이기 때문이다.

국악도 경쟁의 문화대상이다.

국내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어야 하며 세계시장에서 고품질로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악이 상품의 가치를 갖게끔 포장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국악이 세계 유일의 것이니까 누가 우리를 추월할 것인가 하는
자만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 세계에 유일한 것 고유한 것도 언젠가는 그것들이 일번적인 것과
평범한 것이 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엄연한 현실이 유일하고 고유한 벽을
허물어 버린다.

국각은 전통음악만이 아니다.

창작음악도 포함된다.

미국어린이들이 저들의 음악으로 신나는 삶을 누리는 것처럼 한국인 우리
자신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양산되어야 하고 어떠한 것도 악기도 사용될수
있다는 저들의 자유와 개방적 사고를 수용하여 국악의 상품화와 고부가가치
고품질화상품 생산을 위한 의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