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중차대한 일임엔 틀림없지만 "용의
눈물"이란 사극에서처럼 피비린내 풍길 정쟁시대는 분명 아니다.

킬링필드를 연상케 하는 후진국정치라면 또 몰라도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의 대통령선거는 그래선 절대로 안된다.

그런데도 요즘의 대선 전초전, 그것도 여당 신한국당의 후보경선 돌아가는
행태를 지켜보노라면 손에 칼만 안들었지 후보나 그 지지자들 사이 오가는
말속엔 비수가 숨겨있고 수단방법은 정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 이나라
정치수준의 향상은 백년하청이란 한숨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후보자가 많다는 것부터 과연 민주화된 최초의 대선이라는 긍정보다는
곱지 않은 부정적 시선들이 주변에서 더많이 느껴진다.

그러나 결정적인 한국정치의 결함 몇가지가 이번에도 예외없이 재현되지
않나 하는 우려들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깊어만 간다.

그 결함이란 말할나위 없이 지역감정, 돈으로 표사고 팔기, 죽기살기식
편짜기로서, 그 결과는 정책대결 아닌 감정대결 세몰이로 선거때마다
대통합이 아닌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첫째 71년 대선에서 싹튼 지역대립은 이번에 과거 어느 선거보다 극심해질
공산이 깊어가고 있다.

어느나라 정치에도 지역대립은 있다.

그러나 한국정치의 지역대결은 가히 생래적이랄 만큼 부지불식간에
빠져들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북돋워 수단화된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정발협 정동포럼 등 지지후보의 집단적 모색이 결국 지역대립으로
변질해가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그것이다.

둘째 돈쓰는 선거가 아니라 숫재 돈으로 표사고 팔기 현상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풍문과 언론보도를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보도내용으로 미루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신빙성을 심어주기
십상이다.

시점상 아직 본격화된 단계는 아니겠지만 신한국당 경선의 막바지인
금주말~내주말이 대의원매표의 위험한 고비라는 육감이 든다.

셋째 죽기살기식 줄서기 현상이 두드러진다.

정치노선이건 성장배경이건 색깔이 같은 그만그만한 후보들의 경쟁인
탓도 있겠으나 정치인은 물론 학연 지연해서 각 후보 주변에 기신대는
몰골은 볼썽사납다.

고속철 실책을 따지는 건설교통위 등 국회상임위에 여당 의원이라곤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고 눈도장 찍느라고 모두 연설장에 내려간 이 현실은
이 나라 정치 단면의 극치이다.

차라리 희극이다.

이래가지고 무슨 정책정당의 후보공천,인물의 대결이 가능한가.

정치인 자신들이 "결국 지역대결이 되고 만다"고 극언을 하지만
"아니다"고 부인하는 그 누구도 없는 것이 이 나라 정치의 현주소
같아 슬프다.

이 슬픔이 괜한 걱정으로 끝나게 하려면 이제라도 여-야 후보, 그 지지자와
유권자들 모두가 눈을 비비고 잠을 깨야 한다.

헌정 50년 경험에서 체득한 교훈을 매번 까맣게 잊거나 막무가내로
외면한다면 남이건 북이건 이 땅에 선진의 미래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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