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로 예정됐던 한보철강의 공개경쟁 입찰이 참가신청 업체가 없어
자동유찰된 것은 한보철강의 정리방식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입찰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찰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유력한 인수기업으로 지목된 현대그룹과 포철 등이 불참의 뜻을 밝히고
동국제강 동부제강 등도 자금여력이 없어 인수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채권은행단은 이달 29일께 2차 입찰을 실시하되 또다시 유찰될 경우
수의계약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며 업계는 2차 입찰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 경쟁입찰에 의한 매각은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한보철강이라는 골칫덩어리의 처분이 쉽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이제
문제는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적절한 조건으로 한보철강을 경영능력이
있는 회사에 넘겨 국민경제의 부담을 더느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수조건을 현실에 맞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은행단은 한보철강의 영업권을 1조원으로 산정했지만 인수후에도 얼마간은
이익이 나지 않을 것이 뻔한데 영업권이 현실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보의 자산및 부채 평가액에 대한 논란도 매각에 걸림돌이 되고있다.

은행단이 내놓은 당진제철소의 순자산액은 4조1천4백59억원으로 당초
포철의 위탁경영진이 발표했던 규모보다 7천억원 이상 늘어나 과대평가라는
의혹이 일고 있다.

게다가 은행단이 밝힌 자산 부족액은 1조6천억원이지만 계열사간
지급보증이나 세금미납액 등을 포함하면 실제 부족액은 훨씬 더 늘어날
개연성이 크다.

인수금액을 둘러싼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은행단은 2차입찰에서도
인수조건을 바꾸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말썽많은 코레스공법에 대한
재검증 등을 통해 정확한 내재가치에 입각한 현실성있는 입찰조건을
제시해야할 것이다.

또 한보철강의 부채에 대해 인수기업이 보증을 서야 한다는 요구도
공정거래법상 전혀 현실성이 없는 대목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내년 3월까지 30대그룹의 상호지급보증 규모를
자기자본의 1백%로 축소토록 규정하고 있어 어떤 대기업도 추가보증여력이
없는 상태다.

이밖에 정부가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2000년부터 차입금이
자기자본의 5배가 넘는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도 한보철강 매각에
큰 장애라고 할수 있다.

한보철강의 경우 그같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면 인수사가
2조6천여억원의 자기자본을 갖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만한 자금을 부담할
기업이 있겠는가.

채권은행단은 이번 1차입찰의 유찰에서 드러난 이같은 문제점들을 정확히
파악, 다각적인 후속조치와 함께 빠른 의사결정이 있어야할 것이다.

한보철강의 처리는 새시대가 요구하는 부실기업 정리방식과 절차를
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