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에 오시면 시계를 다시 맞추세요"

이태원에서는 시계 바늘을 거꾸로 한바퀴하고도 2시간 더 뒤로 돌려 우리
보다 14시간 늦은 뉴욕 표준시간에 맞추는 것이 차라리 나을성 싶다.

새벽 2시면 뉴욕에선 정오.휘황찬란한 이태원 거리의 네온사인 불빛은
뉴욕의 한 낮 태양빛을 무색케 한다.

용산 미8군 캠프에 소속된 미군을 비롯 주한 외국인들과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의 쇼핑 명소로 이름 높았던 이태원.

하지만 태양 아래 그 거리의 주인은 외국인일지 몰라도 네온사인 아래
이태원 밤거리의 주인공은 노랑머리 하얀피부의 외국인이 아닌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이태원은 이제 "이 밤이 다하도록 화끈하게 즐겨보자"는 생각 하나만으로
가득찬 젊은이들 사이에서 흥겹고 달콤한 쾌락을 안겨주는 보증수표로
통한다.

"다른 곳에서 1,2차를 거친 젊은이들이 밤새워 놀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여기죠. 자정이면 아직 초저녁인 걸요"

이태원에서만 10년째 속칭 "삐끼"로 일하고 있다는 서모씨(32)는 "밤새워
나이트클럽에서 노는 것으로도 부족해 아침에 근처 단란주점을 다시 찾는
사람들까지 있다"며 지칠줄 모르는 이태원의 밤문화를 전한다.

이태원 곳곳에 있는 나이트클럽 중에서도 "물" 좋고 "부킹" 확실하기로
소문난 한 업소.새벽 3시가 다 된 시각인데도 플로어에는 젊은 남녀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친구의 생일파티를 위해 이 곳을 찾았다는 정모양(21)은 "하룻밤 모든 걸
잊고 즐기기에는 이태원이 최고"라며 박진영의 "그녀는 예뻤다"가 흘러
나오자 친구들과 무대로 뛰어 나간다.

"까치"라는 예명을 가슴에 단 짧은 머리의 한 웨이터는 "예전엔 부킹,
이른바 짝짓기를 여자들에게 권하면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이젠
오히려 여자 손님들이 더 적극적"이라며 신세대들의 달라진 모습을 전한다.

이태원 거리에도 빈부의 차는 있게 마련.

소방서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이른바 "평민골목"으로 불린다.

반면 비바백화점 근처는 연예인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잘 빠진 외제차들이
즐비한 "귀족골목"이다.

술 값도 평민골목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주말에는 외국산 양주만 파는 데도 빈 자리가 없을 정도.

사람들이 달콤한 잠에서 깨어 다가올 하루를 준비하려는 시간.

이태원에서 화려하고도 긴 밤을 지샌 청춘들은 그제서야 "지나간" 하루를
서서히 끝낸다.

아쉬운 마음을 다음으로 미루며 그들은 "밤의 거리"를 떠난다.

그리고 시계 바늘을 다시 돌린다.

뉴욕 시간에서 한국 시간으로.

< 박해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