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이 일찍 찾아온 장마더위 만큼이나 국민을 우울하게 만들더니
7월 들어서면서 조류를 바꾸는듯 하다.

정당, 그중에도 여당이 뭐 잘한 것 있다고 용을 자처하며 8~9명이나 나와
설치느냐는 반발, 게다가 이회창씨의 당대표직 진퇴문제가 국정의 전부인양
맞물리는 이-반이파간의 지루한 다툼에 국민들의 짜증은 돋우어질대로
돋워졌다.

그러던 중 이만섭씨가 신한국당 대표서리를 맡아 어제 열린 국회에서
대표연설을 했는가 하면 정발협은 지지후보 선정을 포기, 사실상의 활동
중단에 들어갔다.

이는 미주 여행에서 돌아온 김영삼 대통령의 결단도 작용한 것이어서
이것이 앞으로 반년안으로 좁혀진 대선정국과 잔임 8개월의 김대통령
정부가 정신을 가다듬고 제갈길을 가는 계기가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난마처럼 얽힌 정국이 만일 이 기회에도 전환점을 마련하지 못하고
혼돈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그로 해서 이 나라가 입을 손실은 그야말로
막중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권은 오로지 차기 대권에만 온 신경이 쏠려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치안이 얼만큼 어지러우며 국민이 얼마나 불안하게
지내는지에는 아예 관심조차 보이질 않는다.

정부는 정부대로 한보사건과 차남 문제로 잔임 채우기에도 곤혹을 느끼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쇠잔한 심경을 추스려 국정을 바로 펴는 일에 매진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대선후보공천직후의 당정개편까지 예고된 터라 고건 총리나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각료들과 손발을 맞춰 나라일에 전념할 여건이 오히려 악화될
소지가 엿보인다.

대선자금 공개관련,여야의 승강이로 세월을 허송하던 끝에 국회가
이제라도 개회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하고많은 입법과제, 대정부 독려차원의 수많은 내외 사건들이
산적한 마당에도 여야의원이나 정부 고관들이 염불보다 잿밥에 마음이
쏠리듯 대권 향방에만 매달린다면 회기 한달은 쏜살처럼 후딱 지나갈
것이다.

홍콩의 복귀로 중국이 대중화 경제권에 시동을 걸었고, 일본이 국력을
바탕으로 영해권 확장의 속셈을 드러내며, 북한이 식량원조 원전건설등
실속과 더불어 군비를 보강하는등 대약동을 거듭 하는 주변정세만 해도
정치가 딴전을 부릴 여유란 없다.

당장 할 일은 오죽 많은가.

돈 덜드는 선거라고 말잔치만 벌였지 구슬을 꿰는 일은 엄두도 못내고
있고, 금융개혁도 지엽적 이견에 부딪쳐 본래 취지를 살리기 힘든 형편이다.

각종 관허요금이 들먹이고, 치안이 엉망이며, 교육이 저리도 열풍을 앓고
있는데도 어느 장관, 어느 정파 하나 내책임이라며 선뜻 나서는 모습은 눈을
비비고도 찾아볼수 없으니 이 아니 걱정인가.

우리는 임시국회개회, 신한국당 대표교체, 정발협 활동중단등 조그만
단서들을 모두 꿰어 대세전환의 전기로 삼아야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