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는 시치미를 딱 떼고, "윤서방에게 할 말이 있으니 바꿔라"

영신은 겨우 침착을 되찾으며 윤효상에게 전화를 넘긴다.

"전화 바꿨습니다..."

윤효상의 음성이 갈려 나온다.

"자네 음성이 왜 그런가? 어디 아픈가? 거기서 둘이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 영신은 겁이 많은 아이야. 그 애를 괴롭히지 말아. 결론은 났지만
자네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많이 달라질 수 있어.

자네에게 필요한건 돈이라고 했지? 왜 거기까지 기분이 잔뜩 나쁜
부부가 갔을까?

자네가 영신이와 별장에 왔다는 정보를 듣고 지금 내가 핸드폰을 걸었네.

정말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지? 그곳은 으슥하지만 나는 언제나 정확한
정보를 그 동네에서 들을 수 있어. 무슨 소린지 알겠나?"

윤효상은 장인의 예민함에 손을 든다.

그는 아내를 혼내주려던 계획을 바꾸기로 한다.

"장인 어른, 나는 정말 두손 들었어요"

"왜? 무슨 음모가 있었는데?"

그는 득의만면해서 청와대로 가는 차속에서 위험한 순간의 영신을
구해준다.

결코 자주 오지 않는 그의 비밀스러운 삐삐가 요란스레 그의 왼손
손목에서 울렸기 때문에 그는 별장에 누가 왔는가를 알았고 정보원은
딸과 사위라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텐가?"

그 순간 영신이 급하게 소리쳤다.

"아빠, 나는 집으로 가고 싶어요. 여기는 무서워요"

그 목소리는 김회장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그는 그들이 싸우고 있다고 직감했다.

"알았다. 윤사장, 어서 영신을 집으로 데려가. 아니면 내가 조치를
취하겠다"

"장인 어른,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을 곧 집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청와대 다녀오십시오"

김치수 회장은 사이가 나쁜 그들 부부가 별장에 왔다는 제보를 듣자
이내 불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도 자기 육감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는
쓴웃음을 짓는다.

"이봐, 윤서방. 내 말 듣게. 30분내로 별장을 안 떠나면 경찰을 시켜서
자네들을 그 집에서 내쫓겠네. 내말 알아듣겠어?"

그래도 그는 불안하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지만 비열한 윤효상은 영신을 해칠 수도 있다.

그는 모든 공식 약속을 어기고 싶다.

얼른 별장 인근의 경찰에 연락을 취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