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경제용어중, 공항이나 재해사변 등의 비상시에 국가가 일반적으로
채무자의 이익을 위해 채무 이행을 일정기간 연장 변경한다는 "모라토리엄"
(Moratorum)이라는 말이 있다.

에릭슨이라는 심리학자는 이 말을 사회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의 지불을
유예하고 있는, 즉 사회적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하며 이런
사람을 가리켜 "모라토리엄 인간"이라고 풀이했다.

아마도 사회적간 책임이나 의무가 면제된 상태, 아직 어른도 아이도 아닌
미숙한 청년기를 일컫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에 이러한 현상은 청년기 뿐아니라 각 연배 계층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볼수 있다.

특히 배우려는 능동적인 자세보다 수동적,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청년기의
사람들은 자칫 냉소주의에 젖어 자기인생의 방황과 회의를 가지며 지나친
호기심으로 돌이킬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기를 거치면서 인생의 올바른 가치관과 목표관을 확립할
수 있다면 탈모라토리엄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남과 더불어 부대끼며 살아가는 지금 우리사회에서 좀더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자아를 발견하고 형성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직간접적인 체험을 통한 배움과 가르침속에서 자신이 꾸려가야 할 인생의
뚜렷한 목표를 바라볼줄 아는 사람이야 말로 건전한 사회와 견실한 기업을
이끌어갈수 있는 원동력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새로운 신입사원을 받아들일 때면 모러토리엄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모라토리엄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수
있다.

한 때의 방황은 인생의 교훈이 되지만 사회인으로서 자신의 확고한 중심을
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한다.

스스로의 인생 목표를 향해 일신하는 자세로 오늘을 살아갈 때 자신이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언제나 자신의 내면을 투영해볼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모러토리엄의 상태를 벗어나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