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4호선 성신여대입구.

이곳의 하루는 다른 곳보다 길다.

자정이 넘어 1시가 다된 거리엔 아직 걷고 있는 젊은이들이 북적댄다.

(엄밀히 말하면 10대 중.고생들이 대부분이지만).

성신여대까지 이어진 거리에도 화려하게 핀 네온꽃들이 늦은밤을 잊은채
활짝 피어있다.

2시가 넘어서면 꽃들은 하나 둘씩 지기 시작한다.

대신 굳게 내린 철문안에서는 새벽을 맞아 "새로운 광합성 작용"이
시작된다.

밀러와 카프리에서 나온 알코올과 말보로가 내뿜는 진한 담배연기가
내일의 양분이 된다.

광합성 파티는 새벽을 모르고 계속된다.

파티에 취한 일부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요란하게 배설물을 토해내기도
한다.

7 ~8년전만해도 고풍스런 전통 한옥촌락이었던 성신여대앞.

이곳은 이제 "제2의 명동" "강북의 압구정동"이라 불리는 잘나가는
유흥지가 되었다.

국적불명의 다국적간판과 비디오방 전화방 소주방 호프집 보세 옷가게가
즐비하다.

소위 잘 나가는 곳에만 있다는 수면방까지도 들어섰다.

대학가이지만 일반 유흥가와 다르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중인 K(21.성신여대 신문방송학과2)양은 "이곳은
다윈이 보면 제일 좋아할 만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 많던 책방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성신책방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조차 힘들다.

한옥들은 자본의 논리에 밀려 4~5층으로 머리를 얹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8년동안 전통주점을 해 온 "고물상"주인 양승도(37)씨는 "전철역을 낀
대학가는 어느 곳이든 상업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라며 "이제는
한옥 주점안에서 스터디도 하고 공연도 하는 곳은 이곳을 빼면 찾기 힘들
정도"라고 전한다.

변한 것은 거리 풍경만이 아니다.

그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취향도 많이 달라졌다.

장구와 대금을 불면서 흥겨워하던 "구식 냄새"를 풍기던 친구같은
손님들은 없다.

대신 장소익씨의 노래나 풍물 테이프를 들으면서 구색을 맞추려는
연인들이 많다.

그나마 멋이 있다며 찾아오는 30~40대 넥타이부대도 얼마 안되는 소수에
불과하다.

그는 성신여대앞 거리가 대학가로서의 면모를 되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머리묶는 리본 하나에 2만원씩하는 프랑스산 "ZOOTY"제품이 고등학생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저녁이면 술에 취한 학생들의 고성이 끊이지 않는 거리는
젊음의 특징이 없다.

10대와 30대가 서로 호흡할 수 있는 거리, 문화와 지성을 말할 수 있는
거리가 그가 원하는 파라다이스다.

그러나 양사장 자신도 해결책을 찾진 못했다.

다만 집주인이 한옥을 헐고 새 건물을 올리자는 것을 만류할 뿐이다.

그도 언젠가는 집이 헐릴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문화와 지성으로의 회귀.

성신여대앞 거리가 지성의 파라다이스로 다시 날 묘책은 없을까.

< 박수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