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은 남녀가 평생동안 공동생활을 하기위해 결합하는 통과의례다.

따라서 부부의 생존중에 이 결합관계를 해소하는 이혼은 비정상적
병리현상이다.

그런데도 이혼은 거의 모든 사회에 존재해 왔고 한 사회의 습속 도덕
종교 등의 존재양식에 따라 각기 다른 이혼제도를 확립시켰다.

그런 면에서 이혼은 필요악이 되어온 것이다.

기독교 이전의 서구사회에서 가부장제 가족제도가 확립된 이후로 이혼은
가장 또는 남편이 전권을 행사했고 처의 이혼청구는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부부의 결합을 천합 또는 천정배필이라고 했지만
남자의 이혼 전권을 제약하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와 여자를 하늘과 땅에 비유하여 하늘인 남편은 땅인 처를 버리거나
내쫓을수 있으나 그 반대의 경우는 인정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결혼은) 둘이 한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마가복음)는 기독교사상이 뿌리를 내리면서 부부관계가 각기 독립된
개체로서의 가치를 부여받음으로써 처의 예속적 지위는 개선되었다.

일부일처제에 의한 부부의 일체성이 강조되어 10세기께부터는
혼인비해소주의 법제도가 채용되었다.

그러나 혼인비해소주의의 엄격한 적용이 많은 폐해를 가져 왔다.

16세기께부터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이혼법은 점차 기독교의 영향에서
벗어났고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혼인이 시민적 계약관계로 선언되면서
이혼이 대폭 인정되게 되었다.

당시의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이혼은 진보된 문명사회의 필수품이다.

그것은 그 사회에 개인의 자유가 있고 경제안정이 되어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러한 이혼관은 전세계적으로 이혼을 확산시켜 왔다.

일본에서는 최근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황혼기 부부들의 이혼이 지난
20년동안에 거의 배가 늘어났고 전체 이혼건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분의1에 달했다고 한다.

그 이혼청구자들 중에는 남편과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끝내고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향유하려는 주부들이 많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극단적 역전현상을 보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