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설마''하던 우려가 어느새 현실이
되어 최악의 상태를 향해 치닫고 있다.

품질로는 선진국, 가격으론 후발개도국 제품의 중간에 치여 수출시장을
협공당하리라는 당초의 우려는 비단 해외시장뿐 아니라 WTO출범 3년이 안된
사이에 국내시장에서조차 국산제품들이 수입상품에 의해 구축당하고 있어
현실화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대도시의 고급 백화점과 중심상가에서 60년대부터 어렵사리
자리잡아온 매장의 중심위치에서 국산품이 구석이나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장상황으로 분명할뿐 아니라 업계와 당국의 집계를 통해 확연해지고
있다.

우선 최근의 일부 집계만으로도 시장점유율의 변화추세는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 들어서 국산점유율이 눈에 띄게 높던 전화기
전기면도기 라디오카세트 등 범용성이 높은 전자제품이 보통 50%이상, 많으면
1백% 가깝게 외국산으로 대체되고 있고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추세가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95년의 90년대비 수입증가율은 전화기 2백65%, 컴퓨터본체 2백23%, 카세트
3백26%, 전자계산기 2백%나 된다.

더욱 놀라운 일은 한때 국내외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보이던
혁제가방의 5년간 수입증가율이 8백34.8%이고 모자 9백64.3%에 의류는 무려
32.05배의 급격한 수직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점이다.

수입대체 저가품수출 기술제휴 보세가공 합작투자 등 갖가지 전략으로
전력을 다해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수출을 늘려오던 수많은 분야의 완제품들이
해외시장은 물론 국내시장에서 마저 다시 주변으로 쫓긴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 가운데 추출되는 몇가지 특징은 향후 한국산업계 경영자 노동계 자체가
지향할 방향, 갖추어야 할 태도를 시사한다고 할것이다.

첫째 국내시장에서 국산품이 외국제에 밀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과거 큰 구실을 해온 국산애용 외제배격운동이 불가능해진 오늘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품질 가격 취향성의 구매의사결정이 거의 1백% 작용한다.

둘째 소비자의 선택기준이 소득의 급격한 항상에 따라 가격보다는 품질로,
그리고 편리성과 디자인으로 급변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셋째 국가경쟁력의 부진원인을 고비용-저효율이라고 보는데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 그것을 시정하는 실질적 진전이 너무나
답보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기관차역을 해야할 정치권이 자체의 고비용 정치의 시정에서 오히려
후퇴해가는 경향은 이만저만 악영향을 주는게 아니다.

산업계가 정치 행정을 향한 공허한 지원요구로 시간을 낭비하기보다
기술혁신 품질개선에 스스로 떨쳐 일어서는 자구자조외엔 별다른 길이 없다.

정부규제완화와 지원이라는 상충된 요구에 매달려서는 품질개선-경쟁력
제고는 달성되지 않는다는 교훈에서 출로를 찾아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