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개혁위원회가 마련한 금융개혁안이 관련 기관장의 협의를 거쳐
정부안으로 확정되어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개혁안은 ''개혁''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여전히 비개혁적임을 알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개혁안을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이라는 해묵은 숙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독립은 여전히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든 금융산업은 다른 산업과는 달리 심한 규제를 받고 있다.

미시적 측면에서 보면 금융규제로 인한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성과 건전금융(sound banking)을 위해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특히 건전금융 측면에서 보면, 금융기관의 도산은 곧 지급제도의 마비를
의미하고, 이는 커다란 외부효과를 유발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필요하다.

이번 금융개혁안은 사실상 한국은행이 독자적으로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통화신용정책 수립의 최고기구인 금통위가 그 구성에 있어 재경원의 영향을
배제할수 없게 되어 있고, 우리나라와 같은 개방경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외환 환율정책, 그리고 국제금융기능을 재경원이 담당토록 돼 있다.

또한 한은이 물가안정에 실패했을 때 재정경제원장관이 한은총재의 해임을
건의할수 있는 조항까지 삽입되어 있다.

결국 한은의 권한은 축소되고 책임만 떠안은 셈이다.

또 통화신용정책의 효율화를 위해 한은이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을 가져야
한다는 한은측의 주장이 수용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위원회가 정부에 소속됨으로써 한은의 감독기능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대신 재경원은 사실상 산업정책의 수행상 필요에 따라
통화신용정책에 관여할수 있는 채널을 모두 가지게 되었다.

문제의 해결책은 통화신용정책의 효율적 수행과 건전금융의 유지라는 금융
개혁의 목적을 다시 살피는데서 찾아야 한다.

한은의 독립성보장을 위해서는, 금통위를 한은 소속으로 함은 물론 그
구성 역시 한은의 재량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가안정의 책임을 한은 총재에게 묻는 것은 권한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에 있어 당연한 것같지만, 한은 총재는 단 한명 뿐이고 언제나 주시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물가안정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유인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조항은 독소조항에 불과하다.

통화신용정책 목적을 위한 금융기관 감독권은 통화신용정책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은에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금융기관의 자율적 영업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하여 종전의 직접규제
방식을 지양하고 간접규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은의 업무가 더 어려워지고 더 정교해져야 하겠지만 거기에 한은이
존재하는 의미가 있다.

어느 정부부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한은도 이제 공문 한장이나 창구의
규제로 시중 금융기관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는 방식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건전금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운영주체를 금융기관
스스로 결정할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예금보험제도를 조기에 시행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주요 금융기관의 장은 사실상 정부가 선임하고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운영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은행의 소유권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소유권을 명확히 함으로써 건전금융으로 유도할 수 있다.

설령 재벌이 금융기관의 운영에 참여하더라도 사적 주체의 합리성을
믿는다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 역할을 할 것이라는 걱정은 지나친 우려다.

지급제도를 유지하고 금융기관의 도산시 예금자의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로서 예금보험제도를 조기에 시행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금융기관들은 보험료를 한푼도 내지 않고서도 한은에 의해
사실상 완전 보험이 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보험제도가 시행되면 건전금융을 위한 감독은 자연히 보험기구가 주축이
될 수밖에 없고, 이 보험기구가 다른 어떤 기관보다도 더 강한 유인을 가지고
감독하게 될 것이다.

보험제도의 실시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차후에 검토할 문제이다.

보험기구는 재경원산하에 둘 것이 아니라 독립기구로 설치해야 독자적인
감독 업무수행이 용이할 것은 자명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통화신용정책이나 건전금융을 위한 금융업무에
정부기관이 관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정부가 재정 및 산업정책과 관련하여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기능을 가져야
하겠다면, 한은 역시 물가안정을 위하여 재정정책에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똑같이 펼수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증권감독원이 투자자 보호, 공정한 증권거래, 자본시장
육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을 바탕으로 증권감독원의
존재여부를 판단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 점에서, 미국의 경우이지만 주식을 새롭게 상장하는 기업에 회계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규제가 투자자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업의 상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벤스톤(Benston)의 연구결과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