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우리가 모임의 형태를 갖추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청주 중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

그래서 대학까지 함께 몰려갔던 친구들.

조치원에서 기차를 갈아타야만 서울에 올 수 있었던 30여년 전, 하숙방
또는 자취방에서 함께 꼬랑내 피우던 친구들.

누군가 결혼할 때마다 함을 메고 신부를 울리던 친구들.

부인들과도 친한 친구들.

누가 먼저라고 조남일 (한소리회 악장) 형이 무오회란 심오한 이름을
붙였다.

"내가 없고 너 또한 없으니"

주의주장도 없다.

그저 만나면 즐겁고 안보면 아쉬운 친구들의 모임이다.

40여년동안 날자를 정해 놓고 만난 일도 없지만 회원 중 누구라도
한번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부부동반으로 뛰어
나온다.

부인들이 이 모임을 더 좋아 한다.

부인들이 친구가 되어 자기들 끼리도 만난다.

모임이 있을 때면 대전에서 달려와 "이제 앞으로 남은 시간을 문화
예술에 정열을 쏟자"는 이론가 김형규 (한국과학재단 연구기획실장) 형의
말처럼 "돈버는 일"보다는 "문화 예술"에 접근하려 애쓰는 친구들이다.

늘 과묵한 민병대 (서울우유협동조합 상무이사) 형.

모임의 장형격으로 그간의 독서량만큼이나 화려한 재담가인 회장 하길용
(해양수산부 항만건설국) 형.

만난기만 하면 즐거워 입다물줄 모르는 정오태 (미성콘테이너 대표이사)형
청주에서 사업기반을 다진 아마추어 기사 이원규(주식회사 선광 대표이사)
형.

하길용의 동생을 아내로 맞은 전건표 (해운항만청 건설과장)형.

산에가면 다람쥐가 되는 홍택기 (스트롱홀드 전무이사)형.

패러독스 (paradox)로 죄중을 웃게만드는 이양기 (대화상사 사장)형.

맛길나게 술을 마시는 김태형 (가나안 신용협동조합 전무이사)형.

대금연주자이며 "무오환"란 모임의 명칭을 정한 조남일 형.

그리고 이홍수 (한국화이자 부사장)형이 모임의 멤버이다.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고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 했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도 만나면 들어도 싫지 않은 옛이야기를 되뇌이고
있다.

이번에 만나면 또 누군가가 새로 읽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특유의
화법으로 주석을 달아 들려줄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콘도라도 빌려 부인들도 모두 모아 이야기나 또 한번
들어볼까.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