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곤 <삼성그룹 중국본사대표>

필자가 중국 베이징에 부임한지 4개월이 약간 넘었다.

조금 늦게 받아보기는 하지만 한국신문들이 이제 나의 중요한 정보원이
되어있다.

그러나 요즈음은 불행하게도 연일 톱으로 취급되는 뉴스는 온통 우울한
내용뿐이고 작은 기사일망정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깝다.

업무차 만나는 중국의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한보사태가 어떻게 결말이
날것 같으냐는 등의 질문을 받고 당황한 적이 많았다.

또 어떤 중국정부의 고급관료는 한국정부의 장관들은 왜 자주 바뀌어야
하는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좀 친해지려고 하면 몇개월도 안되어 바뀌어 그들과 어떻게 업무를
진행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대도시의 도심과 교외에 하늘을 뒤덮고 있는 고층빌딩 건설용 타워
클레인이 웅비하는 중국경제의 번영을 보증이라도 하듯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밑에서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된채
개미처럼 일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무더운 날씨에도 에어컨도 없는 찜통 공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젊은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면서 필자는 20, 30년전의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중장년 세대들은 먹을 것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가정을 잊고
자신을 희생해가며 일에만 모든 것을 걸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구의 한구석에 자그만하게 자리잡은 한국이 오늘날의 중장년세대들의
피눈물나는 노력덕분에 20세기말 전세계 1백80여개국중에서 교역량 12위의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우리 5천년 역사에서 어쩌면 가장 화려한 금자탑을 세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화려한 활동상과 업적을 일구어낸 오늘날의 중장년 세대들의
시각에서 볼때 현실은 분명 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소용돌이가 사회의 급속한 변천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하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난관을 반드시 극복할수
있을것으로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을 갖게된 배경에는 과거 30여년간을 주로 무역회사에
근무하면서 잦은 해외출장을 통해 우리의 기업들이 해외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도전하며 결국 경쟁상대를 압도하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현재 중국에 주재하면서 이런 확신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째 우리의 산업역군들이 국가경제와 회사영업의 성공을 이끌어 낼만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고 굳게 믿고있다.

지금도 중국 각지의 산업현장에서는 비지땀을 흘리며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있는데 바로 이들이 우리 경제를
이끌고갈 든든한 산업전사들이다.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중에 "장강후랑추전랑"이라는 말이 있다.

양자강의 뒷물결은 앞물결을 밀고 전진한다는 의미로서 후세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앞으로 밀고가면서 더좋은 결과와 성과를 낸다는
뜻이다.

우리 중장년세대들의 악착같은 난관극복의 과정을 지켜보아 왔던 오늘날의
젊은 신세대들은 자신의 아버지 형님들보다 더욱 찬란한 업적을 거둘것으로
확신한다.

현재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에는 수천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성공적인
미래 중국시장경영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중국어와 중국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이 있는 한 우리 경제는 각종 문제점과 모순들을 하나씩 포용하고
융해시키면서 국가발전 견인차 역할을 하리라고 믿는다.

둘째 우리는 5천년역사를 가지고 있으나 기(기)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살아왔고 6.25이후 십수년간은 가난과 기아의 악순환속에서 신음하다
급기야는 국가 현대와의 기치아래 모두 합심단결하여 국가의 기운을 절망에서
희망의 국면으로 반전시켰다.

오늘날 나라전체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것도 우리 사회가
더 밝은 미래를 창출하기 위한 진통으로 생각하자.

우리의 민족성은 약간 조급한 편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로 생각하고 있으나 좀더 시간을 갖고 차분히 냉정한 상태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중국인 또는 중국사회 특유의 "여유"를 조금씩 체득하자.

그들은 사회가 천천히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빙동삼척비일일지한
적수천석비일일지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3척두께의 얼음은 하루의 추위로 결빙된 것이 아니고, 한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의 구멍을 내는데는 하루의 작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우리 국민 모두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충분한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서 사회의 개혁과 변화를 점진적
으로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중국 위협론이다.

전세계의 경공업제품 시장에는 중국제가 없는곳이 없고 미국의 백화점도
온통 중국상품으로 뒤덮여 있다.

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값싸고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드는 한 중국경제는
희망적이다.

이제 우리경제는 중국경제의 도도한 압박공격에 대한 올 코트 프레싱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맹자가 일찍이 국민계몽을 위해 "생어우환 사어안락"이라는 말을 했다.

위기감을 느끼고 위기의식을 느끼고 살면 생존할수 있고 안락함을
추구하면서 살면 죽게된다는 의미인데 오늘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음미해볼만한 어구가 아닌가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