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그 자체는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아버지를 따라 팔도 물좋다는 곳은 어디든지 구경다니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더큰 즐거움이었다.

아버지께서 어린 아들을 부지런히 낚시터로 끌고다니셨던 속내는 이런 것
저런 것 챙겨서 뒤따르는 "짐꾼"으로 부릴 요량이셨던것 같지만 성장하면서
아버지가 낚시 떠나실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낚시는 어느새 나의
즐거움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청소년기 "공부"가 지상과제가 되면서 낚시는 한동안 나에게서 멀어져
갔다.

다시 낚시가 내 인생의 동반자가 된 것은 직장생활이 시작되면서였다.

전산프로그램 개발에 매달려 밤낮없이 끙끙대는 사이 쌓이는 머리속
온갖 잡티들을 깨끗이 비워버리고 새롭게 월요일을 시작하는 데는 주말
하룻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며 고요의 호수에 마음을 담그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의 "강태공"들이 하나 둘 모여 같이 떠나는 기회가 잦아졌고
급기야는 "동호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대어나 월척이 전하는 그 짜릿하고
숨막히는 "손맛"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이가 없다.

오랫동안 낚시를 즐겨온 우리 낚시동호회 정진각 팀장, 엄홍식 책임,
현재 동호회장을 맡고 있는 신선일 팀장, 박무완 팀장, 장정호 팀장,
문영철 전임 등 대가들은 물론 총무를 맡고 있는 미혼의 최성희 주임까지
우리가 낚시를 좋아하는 또다른 이유는 자연속에 조용히 앉아 심신을
정화하는 "고요"에서 얻는 보람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동호회원들은 대어를 낚기 위해 무리하는 일이 없다.

우리들로 인해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자는 것이 우리
동호회 활동의 기본 원칙이다.

오직 미끼로만 사용할 뿐 떡밥 살포는 일절 금물이며, 돌아올 때는
주변에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흔적없이 청소하는 것을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올해도 경기도 장지리지에서 시작된 조류가 충청도 초평지, 강원도
영월로 이어져오고 있다.

첩첩 산자락에 쏟아지는 별빛사이로 산짐승들의 긴 울음소리만이 간혹
어둠의 정적을 가르던 강원도 양구에서의 그 감동, 미처 손 쓸 여유도
없이 낚싯대가 부러지면서 강속 깊숙이 도망가는 "고래"를 잡으러
얼떨결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어느 겨울 금강의 아쉬움등은 아직도
지울 수 없는 "꾼"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