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날 독일의 대시인이 된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학교에 다닐 무렵엔
무척 대담한 아이였다.

어느날 아버지로부터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실러는 "아버지, 나는 항상 세계의 한쪽 구석에 살다보니 아직
세계르 무엇인지 모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때 아버지는 "조국에 머물러 정직하게 살자"는 격언을 들어가면서
조국이 어떠한 것이고 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우쳐 주려했다.

그러나 실러는 "조국이라구요? 대체 세계이외에 조국이라는게 있어요?
사람이 사는 곳이 곧 조국이겠지요"

조국관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한 소년기의 실러에게는 이렇게
생각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에게 조국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고향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는 "조국은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또 그밖의
모든 조상들보다도 더욱 귀하고, 더욱 숭고하고, 더욱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소중히 여기고 조국에 순종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이러한 조국 예찬관은 오늘날 세계가 하나로 묶인 지구촌
시대가 되면서 어느덧 실러가 소년기에 가졌던 소박한 조국관으로 퇴색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최근 삼성생명이 서울 경기 강원지역의 초.중.고생 3백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조국관 퇴조현상의 편견을 엿볼수 있다.

조사대상의 64.9%가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면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서"라고 응답한 학생의 비율이
초.중.고로 올라갈수록 큰 감소세를 보였다.

우리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쉽게 짐작해 볼수 있다.

이른바 "입시지옥" "과외지옥"으로 대표되는 열악한 교육환경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이 땅에 태어난 것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입시제도의 과감한 혁신으로 치유해가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대상 인원과 지역이 일부에 국한된 조사이지만 어린 청소년들의 조국관을
비뚤어지게 만든 기성세대의 책임을 통감된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