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업체에 다니는 40대 정모차장은 그제 아침 초등학교 다니는 딸로부터
난데없는 구박을 받았다.

딸아이가 켜놓은 컴퓨터를 잘못 건드렸다가 "아빠는 이것도 못하세요"라는
당돌한 핀잔을 들어야 했던 것.

정차장은 그날 온종일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회사에서 컴맹이라고 부하직원으로부터 구박을 받아왔던 터라
충격이 더했다.

점심무렵 "이번 기회에 기필코 컴맹의 굴레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을
다진 그는 즉각 회사 전산실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컴맹 탈출 15일작전"을
세웠다.

이때 전산실의 후배는 그에게 두가지를 부탁했다.

첫째 컴퓨터를 두려워하지 말고 둘째 타자부터 익히라는 것.

윈도95가 아무리 각종 프로그램을 잘 운용해준다고 해도 컴맹이나 컴맹에
가까운 사람들은 대체로 컴퓨터 공포증에 걸려있기 때문에 컴퓨터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타자에 서툴면 컴퓨터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수 없는 맹점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날부터 정차장은 1주일동안 매일 한시간씩 컴퓨터앞에 앉아 자판연습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루함을 덜기 위해 퇴근길에 타자연습용 소프트웨어(SW)인 한글과컴퓨터의
"글타자"나 한메소프트의 "한메타자교사"중 하나를 구입할 계획도 세웠다.

1주일후 더디긴 하지만 제법 컴퓨터 자판을 두드릴수 있게 된 정차장은
곧바로 색다른 고민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배우는데 있어 일반적인 컴퓨터입문서로 충분한지,
아니면 시청각 자료를 바탕으로 보다 쉽게 컴퓨터를 배울수 있도록 돼있는
컴퓨터 학습용 CD롬 타이틀을 구입해야 할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것.

어떤 제품이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작정한 그는 그날 오후 곧바로
서점을 찾았다.

그러나 엄청나게 쏟아져 나와 있는 컴퓨터 입문서에 정차장은 그만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입문서 뿐만 아니라 컴퓨터학습을 위한 CD롬도 여러회사에서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욕심내지 말고 운영체계인 윈도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부터
시작해 컴퓨터와 친숙해지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전산실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정차장은 지체없이 윈도(한글96)를 쉽게 소개한 초보자용 입문서와 컴퓨터
교육 CD롬을 하나씩 골라 서점을 나왔다.

윈도와 워드프로세서를 다소간이나마 익히고 난 다음 PC통신과 인터넷,
그리고 업무에서 많이 이용되는 계산프로그램(스프레드시트), 거래전표관리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와서 입문서에 설명된대로 차분히 공부하던 정차장은 그러나 이틀만에
초보자용 교재를 따라가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영어로 된 컴퓨터 관련 용어에 익숙지 않아 속도가 더딜뿐 아니라 전혀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없지 않아 갖가지 문제에 부닥쳤던 것.

정차장은 쑥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할수없이 전산실 후배를 다시 찾았다.

후배는 "컴퓨터 초보자들이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로 전혀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그동안 느꼈던 여러 궁금증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었다.

또 PC통신회사들이 자체 통신망을 통해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강좌를 통해서
도 컴퓨터 학습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가르쳐주었다.

그후에도 정차장은 수시로 후배를 찾긴 했지만 게으름 피지 않고 열심히
노력한 끝에 윈도와 워드프로세서를 이제 자신감을 갖고 운용할수 있게 됐다.

특히 컴퓨터 입문 보름여만에 아내와 딸에게 보내는 간단한 편지를 "한글96"
워드프로그램으로 작성한후 잉크젯프린터로 출력해 집에 들고 갔을 때의
기쁨을 잊을수 없다.

아내와 딸이 "당신 언제 컴퓨터 배웠어요" "아빠도 이제 컴퓨터 잘다루네"
라며 무척이나 놀라워했기 때문.

정차장은 최근들어 부하직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회사업무에 꼭 필요한
스프레드시트와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

이제 대강의 컴퓨터 운영원리를 알게된 탓인지 진척속도가 전보다 훨씬
빠른 느낌이다.

요즘 그는 하루빨리 인터넷을 배워 당당한 네티즌으로 거듭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 김수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