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발생한 걸프전은 정보기술의 위력을 한껏 발휘한 전쟁이었다.

수적으로는 열세였지만 정보기술로 무장한 연합군이 이라크 군대를
공격해서 단지 100여 명의 사상자만을 내고 전쟁을 승리고 이끌었다.

이와같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전쟁은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경영에서도 정보기술은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를 경쟁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그러나 197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미국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정보기술의 효과는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매우 실망스러운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반영하여 한 미국의 유력지는 "정보기술의 생산성
패러독스"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에서 정보기술의 부정적인 효과를
경고하고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에 보다 신중함이 요구된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기업들은 정보기술로부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업무방식을 그대로 전산화해서는 안되며
업무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시켜야 한다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들 기업은 정보기술투자의 초점을 "채찍효과"와
공급연쇄에 두게 되었다.

공급연쇄란 기업의 상류와 하류를 연결시켜서 최종소비자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체 과정을 말하며,채찍효과란 이 공급연쇄 과정에서
채찍의 손잡이에 해당하는 소비시장의 조그만 변화가 채찍의 끝에 해당하는
상류의 공급기업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하류의 소매점에서 소비자의 구매수준이 일시적으로 5%정도
변하면 상류에 있는 제품 제조업체나 원자재 공급업체로의 주문은 20~40%
정도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채찍효과는 기업경영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조그만 수요변화가 생산을 급격하게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기 때문에
생산주기가 불규칙하게 되고 생산이 증가하여 재고량이 늘어난다.

주문량이 증가할때 생산자는 생산능력의 한계를 넘어 공장을 가동하다가
현재의 수요수준이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믿고 생산시설에 대한
추가투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수요가 급락한 뒤에는 과도한 시설로 압박을 받게 되고, 재고량의
증가는 밀어내기식의 판매를 유발하여 수익성이 떨어진다.

공급연쇄 상의 채찍효과를 축소시키기 위해서는 소매점이 판매 정보를
공급업체들과 공유하여 소비수준에 알맞는 적시생산체제를 구축해야만 한다.

미국기업들은 여기에 정보기술을 적용하여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최대 소매업체인 윌마트사가 참여하고 있는
공급연쇄이다.

윌마트는 점포 계산대의 스캐너로부터 수집된 판매정보를 컴퓨터망을
통해 주요 공급업체들에게 실시간으로 제공해주고 있다.

이와같은 전략으로 윌마트가 참여한 공급연쇄는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이 전략은 일반 소매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 의약품 등
대부분의 공급연쇄에 확산,적용되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와 같이 채찍효과를 축소시키는데 적용된
정보기술은 미국의 소비자불가률 40%정도 하락시킨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정보기술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논의도 사라지게
되었다.

정보기술투자의 수익률이 다른 어떤 투자수익률보다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미국 제조업체의 가동율 변화가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그 이전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안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수백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경기순환현상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채찍효과를 축소시키기 위한 미국기업들의 노력이 경제 전체에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되찾게 된 비결인
것이다.

우리 실정은 어떠한가? 우리 기업들도 공급연쇄에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투자하여왔다.

그러나 문제는 정보가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POS시스템을 운용하고 있지만 이들은
판매정보를 제조업체에게 제공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제조업체들도 영업이나 생산에 관한 정보를 원자재 공급업체들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

외부 업체뿐만 아니라 조직 내부에서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

비자금 조성, 탈세 분식결산 임금협상 등의 이유로 기업경영에 비밀이
많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기업이 국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우리 사회의 뿌리깊은 불신과 부정부패는 이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대형 부정사건이 터질 때마다 경제를 우선 살려야 된다는 이유로 적당히
넘어가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가 제고되어서 기업이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보기술에 투자하는 것은 기업의 비용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