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에서 제2바이올린 연주자의 역할은 수석연주자 못지않게
중요하다.

제2바이올린 연주자가 제역할을 못하면 음이 공허해지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청중들에게 제소리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그럼에도 연주가 끝나면 지휘자와 악수하면서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받는
사람은 항상 수석연주자 뿐이다.

어느 조직이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자기일을 다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발전한다.

성경에 있는 얘기 하나인데 모세가 애급을 탈출한 후 르비딤에서
여호수와에게 아멜렉군대와 싸울 것을 명하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을 때 좌우에서 지친 모세의 팔을 붙들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있었던 아론과 홀이 없었더라면 여호수와군은
아멜렉군을 이기지 못했고 이스라엘 역사는 지금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아론과 홀이라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듯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며 이들을 소중히 여길줄 아는 사회가 성숙된 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1등 지상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한 사회를 실제로 지탱하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공은 인정받지 못하고
오로지 1등에게만 박수를 보내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는 얼마전 신문과 TV에서 자주 볼수 있었던 어느 대기업의 광고카피다.

대학입시때나 졸업때면 언제나 수석만 각광받고 올림픽 경기에서도 항상
금메달 수상자만 홀로 영광스럽다.

1등만 인정받고 나머지는 무시당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일종의 병리현상일 수도 있다.

사회는 승자만 있는 전장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묵묵히 자기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제2바이올린
연주자와 같은 사람들이 진정한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