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후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 졸업자들이 외국유학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들중 많은 학생들이 특히 미국을 선택했는데 당시 미국이라는
거대하고도 부유한 나라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래서 많은 학생들은
미국으로의 유학 기회를 찾았다.

이공계 학생들은 외국대학으로부터 재정적 지원까지 받을 수 있어 무료로
학업을 마칠수 있었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더더욱 부러움을 받았다.

필자도 그러한 사람중의 하나로 64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국립연구소의 연구사로 근무하면서 그 때 환율로 계산하여 미화
약 28달러의 월급을 받았는데 한달 용돈과 집안살림에 약간의 도움을 줄수
있는 정도의 봉급이었다.

그렇게 미국 대학에서 제공해 주겠다는 조건은 학비 전액이 면제일
뿐만 아니라 월 2백달러의 생활비까지 준다고 통보가 왔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한 일이었겠는가.

1주일에 단지 9시간 정도 실험조교로 일하면서 한국 직장보다도 7배나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비싸서 제대로 먹어 보지도 못했던 계란 불고기 등을 배불리
먹어도 한달 생활비가 1백달러도 넘지 않았고 간간이 한국에 송금을 하기도
했으니 한국 수준으로 보면 감히 호화스런 생활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시말해 그 당시 한국과 미국의 생활수준은 엄청난 격차를 갖고 있었다.

미국 언어와 생활습관에 익숙하지도 못한 나같은 사람에게 생활비까지
주어 가면서 왜 미국은 나에게 무료로 학위를 얻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까지
주었을까.

빈곤한 후진국에 대한 원조였을까.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러시아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있으면 나는 러시아 덕을 많이
본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하곤 한다.

그 말을 듣고 대부분 러시아인들은 매우 놀라운 표정을 짓는다.

러시아 덕택에 미국에 가서 무료교육을 받고 왔다고 하면 잘 이해가
안된다고 대답하기가 십상이다.

57년 당시 소련은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Sputnik)란 이름의 인공위성을
지구궤도 상에 쏘아 올렸는데 이는 미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정치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에 있어서도 세계 최강임을 자부해
왔던 미국이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은 이해할만 하다.

인공위성을 지구 위로 정확히 쏘아 올릴 수 있는 정도의 추진력을 가진
고성능 로켓을 소련이 갖고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미국
본토를 공격해 올수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의 과학기술이 소련에 뒤지게 된 원인은 바로 기초과학이
소련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이 때부터 엄청난 재정적 지원을
기초과학에 투자하게 되었다.

비록 지구 궤도상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일에는 소련에 뒤졌다 해도
최초로 인간을 달나라에 보냄으로써 다시 과학기술의 주도권을 잡고자
하였으며 이는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인간을 달에 보내는 Appllo계획을
만들게 하였고 그를 위한 대대적인 과학기술 투자를 시작하게 하였다.

빠른 시간 내에 이 일을 이루려고 하다 보니 한정된 미국 과학
인력만으로는 연구 수행을 위한 인적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 두뇌를 데려다 대학원 연구의 손발 역할을 하도록 하면서
교육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고 그 일환으로 필자도 무료 미국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많은 대학에서도 우수한 대학원생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들 말한다.

본인이 몸 담고 있는 정부출연연구소나 주위 민간기업연구소에서도 우수한
연구원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연구해야할 과제는 많은데 한정된 인적자원으로 충분한 수 만큼의 우수
연구자를 충당할 수 없게 되었다.

최근 몇년전부터 중소기업에서는 외국 근로자들을 채용하여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데 기업연구소나 국공립연구소에서도
외국의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채용하는 경향이 늘어가고 있다.

화학연구소에서도 여러명의 외국인 연구자들이 박사후과정(post doctor)
또는 전문가 신분으로 연구에 종사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볼 때 연구 성과도 기대 이상으로 좋다고 본다.

40여년 전 미국 등 선진 외국이 하던 대로 이제 우리도 외국인을 초청해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에 그들을 참여시킴으로써 부족한 연구인력을
보충해가고 있다.

과학기술교류를 바탕으로 국가간 문화 교류나 경제교류등도 부수적으로
없을 수는 없겠지만 우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초청하는 것이지 그들을
위해 지원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과학기술 수준이나 환경이 60년대 미국과 같을까
하고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곤 한다.

당시 나를 지도했던 미국 대학의 지도교수는 나 보다 연구능력도
뛰어났고 연구업적도 훨씬 많았음을 지금도 인정하고 있다.

실력뿐만 아니라 연구에 임하는 태도와 열정도 지금 우리의 실정과
비교해 보아 훨씬 우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엄청난 돈을 들여 외국 두뇌를 유치하여 결국 자기들이 원하던
소기의 목적을 이루어 달나라에 인간을 착륙시키기도 하였고 소련에
뒤떨어졌던 과학기술도 앞지르게 되어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강국의
면모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과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부족한 두뇌를 유치함으로써 달성하려고 하는 국가적 목표가 있는가.

그들을 지도하는 우리의 연구책임자는 그들을 지도할 만큼 실력이
앞서 있는가.

또한 학생들을 비롯해 연구원들을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열성과 체제, 또 분위기는 마련되어 있는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석연치 않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경제 논리에 맞게 투자한 것 이상의 결과를 얻어야 할텐데 그런 각오는
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고 본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외국 과학기술자들이 끊임없이 우리나라로 오고
있는데 그 우수한 과학기술자들을 계속 공급받으려면 그들에게 걸맞는
이점도 있어야만 할 것이다.

경제적인 배려도 한 방편이겠지만 과학기술의 본질상 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무엇인가 선진 과학기술을 습득하고 돌아가 계속 우리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연구거리를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유명한 연구소의 업적이 많은 연구 책임자 밑에 우수한 연구원이 모이게
마련인데 우리나라로 와서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있는지 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단지 몇년간의 추세만 보고 단정
지을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우수한 외국 과학자들이 좀더 많이 와서 우리와
함께 훌륭한 연구성과를 내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국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과학기술특별법이 통과되어 과학기술인들은 말로만이 아닌
실질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에 큰 지원이 있을 것으로 한편 기대하고 있다.

단기적인 성과 찾기에만 급급하지 말고 우수한 연구인력을 배출해 내는데
필요한 연구환경 조성에 좀더 장기적인 대투자가 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