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는 그의 수려한 외모에 빠져들면서 꽃향기에 빠져서 정신을
잃을 때처럼 무아경이 된다.

그것은 가끔 꿈많은 소녀들에게서 느끼는 시선이며 황당한 기억들이다.

몇년 전에 만났던 미대 여대생이 자기를 너무나 왕자같이 바라보아서
끝내는 도망치고 말았듯이 지금도 지영웅은 미아에게서 미리 도망칠
궁리부터 열심히 한다.

그것이 미아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오히려, "한국에는 얼마나 오래 머물러요? 부모님은 미국 어디 계시구요"

"LA에 계시고 나는 가끔 와서 놀다가고 그래. 엄마하구 둘이서"

"바람 같은 남자군요. 호호호, 점점 더 멋있다. 영이 오빠는 왜 그렇게
안정감 없이 떠도는 구름 같은 남자로 보여요?"

"나는 바람 같은 사나이니까. 하하하"

"학생은 아니지요? 아닌 것도 같구? 너무너무 궁금한 것이 많아요"

"나는 이제 그만 나가봐야겠어. 사우나에 가서 좀 쉬고 싶어"

"여기 온지 10분도 안 됐어요. 바람처럼 또 놓칠 것 같아서 그러는데요.
내 전화번호 드릴게 꼭 전화줘요. 아무리 재수생이지만 나도 뭔가 근사한
꿈과 희망을 갖고 싶어요. 영이 오빠가 나를 가끔 만나서 커피라도 같이
마셔주면 나는 그것으로 대학에 쉽게 들어갈 것 같애. 오빠 삐삐번호라도
주세요"

"삐삐번호가 없는걸. 나는 그걸 차고 다니면 끌려다니는 기분이어서.
하하하"

바로 그때 그의 허리에서 삐삐가 몸을 흔들듯이 울린다.

지영웅은 보지도 않고 그 스위치를 꺼버린다.

자기 방에서 나오면서 삐삐를 차고 열어놓았더니 이렇게 첫번째 신호음이
울린 것이다.

"오빠는 거짓말쟁이군요. 아니면 내가 싫다거나 그런 거죠?"

"싫은 여자면 차도 같이 안 마시지"

"그건 또 그렇군요"

미아는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그는 거짓말이 들킨 것을 희석하는 의미로, "나는
원래 삐삐를 싫어하는데 어머니에게만은 그것을 허락하고 있어. 마미는
나의 인생 그 자체니까"

그러면서 그는 조금 전에 삐삐를 보낸 것이 누구인가 하고 잠깐
생각해본다.

혹시 김영신 사장인지도 모른다.

그는 힐끗 허리께로 시선을 보내면서 삐삐에 찍힌 전호번호를 확인한다.

아뿔사 그것은 소대가리 형님의 번호였다.

그의 기분은 금세 비참하게 일그러진다.

이제 또 콜보이의 생활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얼른 모든 관계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결심이 가슴을 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