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원조때 중 증선지가 지은 "십팔사략"에 "곡돌사신"이란 말이
나온다.

"십팔사략"이란 중국 십칠사에 송사를 더한 "십팔사서"를 초보자에게
알기 쉽게 간추린 역사서이다.

그 "십팔사략" 서한선제항에 나오는 이 비유는 근래 우리 세태에 깊은
시사를 준다.

옛날 중국 어느 사람 집 부엌에 곧은 굴둑이 있었고 그 곁에 장작이
쌓여 있었다.

이를 본 손님 치 "불똥이 떨어지면 불이 납니다.

굴둑을 구브리고 장작을 다른 곳에 옮기십시요"하고 중고했다.

그러나 주인은 그 말을 듣지않아 결국 장작에서 불이 났다.

다행히 마을사람들이 불을 꺼서 별 탈이 없었으므로 주인은 크게
기뻐하며 소를 잡고 술을 사서 잔치를 베풀었다.

이를 본 사람이 주인에게 말했다.

"전에 손님이 한 충고를 따랐다면 소를 잡고 술을 살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굴둑을 구브리고 장작을 옮기라고 가르쳐 준 사람에겐 아무
보상이 없고 머리를 태우고 화상을 입으며 불을 끈 사람들에게만 잔치를
베풀다니요"하고 항의했다. (곡돌사신무은택/초두난액위상객야).

위험이나 위기를 예상해서 직언을 해도 동료나 상사가 묵살하는게
지금의 우리 세태라 할수있다.

반면에 현실적으로 위기가 닥쳤을때 밤잠을 자지않고 뛰어다니며 수습한
사람이 동료나 상사에게 주목되고 칭찬을 받게된다.

본말전도라고 할수 있다.

한보 특혜대출 비리사건 선고공판에서 손지열 재판장은 판결문 낭독에
앞서 "2개월여동안 사건 공판을 진행하면서 과고의 잘못을 처벌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느꼈다"면서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살펴보아 각자
입장에서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사건의 의의를 설명했다.

죄인이 재판에서 처벌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죄인이 처벌됐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건 아니다.

한보사건의 여파는 재판진행과 관계없이 사회 경제적으로 큰 부담으로
남는다.

한보사건 1심선고를 보면서 이 고사가 생각나는 건 우리가 너무나
역사에서 배우는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