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랑은 가변적이다.

사랑은 쉽게 변하고 완벽하지 않다.

김영신은 나이와 함께 그것을 체험으로 알았고 지코치는 나이가 어려서
아직 잘 모른다.

그러나 경험은 어떤 면에서 가장 진리에 가깝다는 것을 지코치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서 나이가 어린 사람과 사랑을 할 때 나이든 쪽은 손해보고
희생하고 헌신하고 이해를 많이 한다.

그리고 어린 남자나 여자는 어김없이 그런 희생을 망각하고 나이든 쪽을
언젠가 배신한다.

그것이 김영신의 사랑의 역사속에 존재하는 인생의 경험이다.

그래도 그녀는 사랑할 때는 모든 것을 건다.

어차피 언젠가 헤어지고 잊혀지고 떠나기 때문에 아낌없이 그 사랑을
위해 결사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을 쏟아붓는다.

현명하고 인간주의자인 그녀는 첫번째 남자인 조각가와 사랑이 식어서
미련없이 헤어졌고 두번째 남편은 타성에 밀려서 그냥 살려고 했지만,
계산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기를 쓴다.

그녀는 모든 양심적이지 못한 인간을 경멸한다.

"모레 만나는 거지? 모레까지는 너무 긴 것 같다"

지코치의 투정은 인간적이고 솔직담백하다.

그녀는 자기에게 기대려는 그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김영신은 그가 지글러로서 아무렇게나 굴러온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성격이 단순하고 우직한 골프코치로만 안다.

남을 의심하는데 서투른 영신에게는 지영웅의 매달리는 태도가 순정으로
느껴진다.

순수한 정열로.사랑이 식어갈때 지영웅이 이렇게 매달린다면 영신은
아마 환멸을 느낄 것이다.

아무튼 틀림없는 사실은 그의 천성속에 금속성의 비정함보다는 부드럽고
훈훈해서 속임수 당하기 쉽고, 여린 감성때문에 손해보는 일을 당해도
웃을 수 있고 낙천적으로 끝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아버지의 재산이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복받은 여자다.

다만 아버지가 사위를 마땅치 않게 생각해서 돈을 더 이상 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아버지는 철학이 있는 기업인이었다.

속는 사람은 행복해도 속이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대인다운 철학이 있는
아버지였다.

그녀가 믿는 것도 바로 아버지의 이러한 인간성이었다.

영신이 확신을 가지고 말한다.

"모레 여섯시에 그 음식점에서 만나요. "고향집"이라 했지. 다음 코스는
춤을 추러가고 싶어"

"김사장은 춤꾼인가봐요. 왜 그렇게 춤을 좋아해요?"

"무용은 내 부전공이거든. 그리고 침대에 드는 것보다 훨씬 엑스터시가
강하니까. 나에게는"

"지금도 그래요? 나와 자고나서도?"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