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에 살고 있는 K회사 박과장은 올해들어 즐거움이 하나 더
늘었다고 자랑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야외로 나가자니 짜증스런 교통
체증에 엄두가 나지 않고, 집에 있자니 가족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난감했는데, 얼마전 도시근교에 옛 고향정취를 맛볼 수 있는 텃밭을 분양
받아놓아 이제는 주말이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오전에 가족과 함께 송파구 세곡동에 있는 농장에 도착하여 10평규모의
상추와 고추 토마토밭에서 김을 매고, 도란도란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그 여유로움, 자연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흙냄새를 맡고,
근로의 소중함을 체험하면서 직접 키운 무공해 농산물을 이웃과 나눠 먹는
넉넉함마저 느낄 수 있다.

농협에서는 몇년전부터 교통이 편리한 도시근교에 주말농장을 조성해
분양하고 있는데, 올해는 약 22만평의 농장에서 3만5천여 가족들이 농장주가
되어 농사체험을 하고 있다.

농민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체험하고
있는 도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수확하는 농사일을 통해 농촌에 대한 향수를 가진
도시민들은 우리 농촌 농업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흙과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은 도시 어린이들은 뿌린대로 거두고 때가 되어야 수확하는
정직함을 배워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갈 훌륭한 동량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매우 낮아 하루에 두끼를 외국 농민의 손에 맡기고
있는 꼴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동차 반도체를 수출해 식량을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흉년이 들거나 국제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식량가격이 폭등함은
물론 물량확보도 어려워지게 마련이다.

식량안보는 국방 못지 않게 중요하다.

내년에는 더 많은 도시민들이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체험하고 우리 농업을
아끼고 사랑하며, 유사시 땅만 있으면 언제라도 농사지을 수 있는 "농업
예비군"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