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달 30일 처음으로 "소비자 파산"을 선고함에 따라 선진국에서
일반화된 개인파산제도가 국내에도 본격 도입될 전망이다.

소비자파산이란 개인이 무절제한 소비생활이나 지나친 빚보증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경우 법원이 채무를 면제시켜 주는 제도로 우리나라
에서는 지난 62년 파산법이 제정된 이후 그간 신청이 거의 없어 사문화된
제도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지법이 은행과 사채업자 등으로부터 2억5천여만원의
빚을 지고 소비자파산을 신청한 어느 대학교수의 부인에게 파산선고를
내림으로써 본격적인 소비자파산시대의 도래가 예고됐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법원에 의해 파산자로 선고받은 사람은 일반채무는 없었던 일로 되고
이번의 경우처럼 빚잔치를 할 돈이 한푼도 없어 파산폐지결정까지 함께 내려
지게 되면 파산면책신청을 통해 파산선고로 잃은 모든 사회적 권리까지 회복
하게돼 엄청난 혜택이 주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뚜렷한 수입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계획적이고 무절제한
소비나 신용거래를 부추길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신용사회 정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헤쳐나가야 할 또하나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의 예만 보더라도 이 제도를 취지에 맞게 운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의 경우 거품경제가 사라진 80년대 후반부터 소비자파산신청이 급증
하기 시작, 지난해만도 6만건을 넘었으며 미국은 지난해 1백만건을 돌파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사회도 신용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고 신용대출이 늘면서 과소비경향이
두드러져 소비자파산은 이미 예고됐었다고 봐야한다.

지난 4월말 현재 카드회사의 연체액은 2조6천억원에 달하고 이중 사실상
파산상태인 6개월이상의 악성 연체액이 8천3백억원에 이른다.

따라서 이번 법원의 소비자파산선고는 문제의 소비자가 예뻐서가 아니라
금융권의 무분별한 카드남발을 억제함으로써 신용사회의 조기정착을 유도하기
위한 선언적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파산할 경우 돈을 빌려준 측도 책임을 나누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앞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신용카드를 발급하는 금융기관들은 채무자의
신용상태를 더욱 철저히 조사해 대출에 신중을 기함으로써 파산신청을
원천적으로 줄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법원은 소비자파산제의 악용소지를 없애는데도 소비자보호 못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

파산법에 소비자가 재산을 은닉하고 허위로 파산신청을 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10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점점 교묘해지는 재산은닉
수법에 비추어 채무상환능력을 정확하게 조사해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정부는 이번 파산선고를 계기로 능력없는 사람이 신용거래의 취약점을
이용, 건전한 상거래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