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마음속으로 존경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뜻을 받들어 제정된 이
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창업부문의 첫번째 수상자로 선정해 주시고 분에 넘치는
축하로 격려해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내일 모레 미수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이 상을 받고 보니 지난
30여년간 반도체 외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저의 과거사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저는 이 자리가 남은 여생을 좀 더 국가와 사회를 위해 봉사하라는 가르침
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며, 80여년의 인생역정과 한평생 기업인으로 살아
오면서 제가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우리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1912년 전남 강진에서 가난한 선비 집안의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암울한 일제치하와 8.15해방 6.25사변 4.19의거 5.16혁명 10.26사태 등
파란만장한 굴곡의 현대사를 살아 왔습니다.

40대에 한때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기업활동에 몸바치며 우리나라를 세계 일등선진국가로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여전히 보릿고개에 시달리고 있던 60년대, 우리나라 정부
정책산업의 근간은 전자공업의 중점 육성이었습니다.

저도 이들 사업에 대한 기초조사를 하던 중 1967년 어느날 "반도체는
손가방 하나만 채워도 2백만에서 3백만 달러의 가치가 나가는 고부가가치
제품"이라는 신문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래산업은 전자공업이 주도하게 될 것이고 전자공업의 핵심은
반도체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반도체가 우주개발 경쟁에서 비롯됐지만 향후 컴퓨터를 비롯한 자동차
의료기기 등 전산업분야에 광범위하게 쓰일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미래사회에 있어서 반도체는 "산업의 쌀"이요, "마법의 돌"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단어조차 생소한 반도체 사업을, 그것도 환갑을 목전에 둔 나이에
시작한다고 하니 자식들을 포함해 주위에서도 무모한 모험을 한다고 다들
말렸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 미래를 위해서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30여년이 흐른 지금 저는 그때의 그무모한 도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아남이 반도체 완성분야에서 세계 최대기업으로 성장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반도체 황무지였던 이 땅에 반도체 나무를 심고 가꾸어 열매를 맺게
함으로써 이 분야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자부심 때문이며 우리나라를 오늘날
미국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세계 3대 반도체 국가로 성장시키는데
일조하였다고 자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저와 아남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습니다.

특히 저의 장남인 현 아남그룹회장 김주진을 비롯한 자식들의 효도가
없었더라면 반도체 산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이자리를 빌려 저의 경험속에서 얻은 경영철학과 창업이념을
통해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역할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업은 사회에 희망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꽃입니다.

기업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변신
경영의 선두주자가 되어 확대재생산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지속적인 기술력
과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소비자에게는 질 좋은 상품을 값싸게 공급하고,
주주와 종업원에게는 적정한 소득재분배를 하며, 국가구성원으로서는 납세
의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둘째 기업은 사회의 공기라는 의식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자유경쟁 체제하에서 법에 저촉되지 않는 자유로운
상거래를 하며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사회의 공기이고 기업경영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공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기업인은 행여 자신의 기업활동이 기업윤리상 어긋나지는
않는가, 국가사회에 누를 끼치지는 않는가하는 관점에서 사업을 생각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셋째 기업은 인간존중의 경영을 통해 인재양성에 힘써야 합니다.

저는 아남의 창업 초기 경제환경의 불안정으로 극심한 불황을 겪으면서도
인간존중의 경영을 고수하였고 비감원 원칙을 견지하였습니다.

불경기에 인원감축 대신 오히려 다음에 올 경기회복에 대비해 과잉인력은
자질향상 교육을 시키는 등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전사원에게 안정감과
에너지 재충전의 기회를 부여하였습니다.

제 말씀을 끝내고자 합니다.

변화의 시대에는 기업도 창업을 모태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기업은 생명체와도 같습니다.

경영사를 보면 창업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창업 역사가 길어도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역동적인 젊음을 되찾는 기업도
있습니다.

사회공익에 기여하고 기업윤리를 지켜 나가면서 사회에 희망을 주는 기업은
항시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산업보국을 위한 기업인의 투철한 의지가 있어야 만이 기업은 항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앞으로도 더욱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민족과 사회를 위해
여생을 다 바칠 것을 다짐합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