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SW)의 세계에 도둑떼가 득실거린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SW가 단 몇분만에 복제돼 2만원에 팔리고 있다.

거리에서는 복제 게임SW가 버젓이 진열돼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개발중인 SW의 핵심기술을 다른 회사에 팔아버리는 얌체
프로그래머들도 등장하고 있다.

불법복제는 이제 개인차원의 주고 받기식이 아닌 기업형으로 발전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법복제 전문회사가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올초 한글과컴퓨터의 K대리는 수사협조 차원에서 검찰과 함께 불법복제단
소굴을 덮쳤다.

세운상가 5층에 있는 2~3평의 사무실에는 CD 복사기 두대와 빈CD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체포된 범인은 28세의 청년.

그의 통장에서는 최근 수년간 월 3백만원 이상의 입출금 내역이 발견됐다.

모두 불법복제로 모은 돈으로 확인됐다.

양재동의 또다른 복제사무실에서도 이와 비슷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 사무실의 두목은 뜻밖에도 대학 2학년생이었다.

그는 용돈을 벌려고 시작했으나 너무 장사가 잘 돼 아예 사무실을 차리고
본격적으로 SW도둑에 나섰다고 진술했다.

SW도둑들의 수법은 날로 교묘해져 007영화를 방불케 한다.

이들이 이용하는 복제사업 채널은 주로 PC통신.

새벽 3~4시쯤 PC통신의 게시판에 연락처와 함께 자기가 갖고 있는 SW
리스트를 올려놓고 수요자를 찾는다.

20분정도 올려놨다가 금방 지우고 사라져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

적발한다 해도 허위 ID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PC통신 가입자가 "SW 삽니다"라는 공고를 올리면 그 사람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복제SW 리스트를 E메일로 전해 거래를 트기도 한다.

전달방법은 마약거래 만큼이나 은밀하게 진행된다.

<><>에서 <><>에 만나자고 지정하고 그 장소에서만 현금으로 거래한다.

수상하다 싶으면 다시 연락, 접선장소를 바꾸기도 한다.

"불법복제자가 한양대 앞에서 만나자고 해서 정해진 시간에 갔습니다.

조금후 범인이 쇼핑백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모대학 법과대 2학년생이었죠.

그의 쇼핑백에는 음란물 CD가 가득했습니다"(K대리)

SW도둑떼가 날뛰고 있어도 막을 대책은 거의 전무한 실정.

워낙 은밀히 진행되고 있어 적발이 어렵고 이 분야를 담당할 수사력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SW도둑떼를 방치한다면 정부가 SW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SW산업을 수출전략 산업으로 키워나기기 위해서라도 SW도둑은 반드시
퇴치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따라서 수사당국이 지속적인 "불법SW 퇴치 작전"을 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작년말 검찰의 대대적인 단속직후 PC통신에 복제SW 리스트가 눈에
띄게 줄기도 했다.

이와함께 피해업체가 고소를 해야 범죄가 성립되도록 한 법규(친고죄)를
고쳐 제3자 고발로 입건할수 있도록 하는 등 법규를 정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불법복제로 일그러진 우리의 "컴퓨터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우선 나만이라도
정품을 사용하겠다는 국민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 한우덕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