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일이 진행될수록 궁지에 몰리게 되는
법이다.

우리의 경부고속철도 사업이 바로 그런 꼴이다.

부실공사와 토목공사 지연으로 선로는 언제 완공될지 알수도 없는 판에
그위를 달릴 열차는 벌써 완공돼 열차의 인수문제가 또다른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열차제작을 맡고 있는 프랑스의 GEC알스톰사는 1호열차 제작을 완료하고
29일 현지공장에서 공개 자축행사를 가졌다.

1호차는 원래 계약대로라면 현지 시험운행없이 내년4월 2호차와 함께
한국에 인도돼야 할 것이지만 우리의 딱한 사정을 감안, 1호차 인도
인수시점을 99년10월로 1년반 늦췄다고 한다.

1호차의 현지 시험운행 비용은 협상끝에 알스톰이 부담키로 했다니
문제는 2호차부터다.

한국고속철도공단은 내년4월과 12월에 각각 2호차와 3호차를 인수하고,
4호부터 12호까지는 99년중에 순차적으로 인수키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요컨대 2호차부터는 돈을 더 주지 않고는 인수 날짜를 늦출 수 없어
국내의 공사진척도와는 상관없이 그냥 들여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차가 달리기는 커녕 잠잘 곳마저도 제대로 준비해놓지 않은채
열차를 인수한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들을 연쇄적으로 야기할 소지가 크다.

무엇보다도 하자보증문제가 골칫거리다.

열차가 제대로 달려보지도 못하고 계약상의 하자보증기간 2년을 훌쩍
넘겨버릴 수도 있다.

들리는 말로는 하자보증 계약서에는 "시험선 구간 완료후 1년"이라는
단서조항도 있다고 하니 당국은 지금부터라도 하자보증을 받을수 있는 길을
확실하게 해놓아야 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열차를 계약대로 인수해 국내에 보관함으로써 발생하는
추가비용을 정확히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잘못 했다가는 돈을 주고 인수일을 늦추는 것만 못한 결과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단측은 인수한 고속열차를 철도가 개통될 때까지 충북 오송 소재
궤도차량본부에 보관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두량이라면 몰라도 많은 열차를
한꺼번에 오송기지에 보관 관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보관열차는 수시로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에 기지내에 2km의 선로를
깔고 견인열차를 달아 한달에 한번정도 수동으로 끌고 다니겠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딱한 노릇이다.

더구나 이만한 일에도 적지 않은 운영요원과 보수요원이 필요해 많은
경비가 들것은 뻔한 일이다.

돈도 돈이지만 당국이 가장 신경을 써야할 일은 뭐니뭐니 해도
안전문제다.

프랑스에선 1호열차를 시운전하는데 20개월을 잡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졸속 국책사업의 표본처럼 돼버린 경부고속철도건설은 결정단계서부터
이미 이런 문제들을 잉태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될대로 되라는 식의 결정이 내려져선 안된다.

지금부터라도 졸속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위한 범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