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가 금융기관장회의를 주재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가 경제문제,특히 국정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금융을
챙긴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지만 과거엔 흔치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관심을 불러 일으킬만 하다.

고건 총리는 내달 5일 은행 증권 보험등 3개 중간감독기관장과 8개
금융관련협회장, 25개 시중 특수은행장및 지방은행대표들을 불러
은행연합회에서 회의를 갖고 금융시장안정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할
것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는 강경식 부총리와 이경식 한은총재도 참석키로 돼있다.

지금까지 경제부총리인 재경원장관이 주로 해오던 이같은 일에 국무총리가
직접 나선 것은 재경원을 못 믿어서라기보다 금융시장의 안정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를 제고시키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보사태이후 나타난 기업에 대한 무리한 자금회수나 대출기피 등
금융경색현상이 지금까지도 개선되기는 커녕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때문이다.

고 총리가 요즈음 주요 공업단지의 중소기업들을 방문해 산업현장의
애로사항을 직접 챙기는 확인행정과도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총리가 나선다고 해서 잘 풀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시장혼란의
심각성 인식과 정부의 관심제고에는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금융불안해소의 일차적인 책임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에 있지만 정부가
할 일도 많다.

그 중에는 정부 스스로 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혼란을 조성하지 않는 일도
포함된다.

이번 총리의 금융기관장회의 소집 배경을 금융불안해소와는 달리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금융개혁위원회가 마련한 감독체계 개편을 둘러 싸고 재경원과 한은이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것에서부터 총리실산하에 금융감독위원회
를 설치키로 한 금개위안을 기정사실화 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 한보파문 등으로 물러난 은행장들의 후속인사와 관련, 금융계가
뒤숭숭한 것도 문제다.

새로 선임된 시중은행장에 대해 사정기관에서 사퇴를 종용하는가 하면
업무상 하자로 행장이 물러 나면 내부승진은 안된다는 인사원칙을 재경원이
은행감독원에 통보했다는 등 자율과 역행하는 금융의 관치회귀 조짐마져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혼란도 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중의 하나라고 보고 빠른 수습을 촉구한다.

물론 작금의 경색된 금융시장을 정상화시키는 데는 은행 등 금융기관
스스로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제2금융권 기관들로서는 대출채권의 부실화 위험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금융기능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시장을 보호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기업금융 정상화에 더욱
노력해줄 것을 거듭 당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