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끝자락, 신불산 기슭에 위치한 삼성전관 부산공장은 잘
정돈된 대학교를 연상시킨다.

단아한 조경, 푸른색과 흰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공장동과 사무동의
모습은 겉만 본다면 영락없는 캠퍼스다.

그러나 일단 공장동으로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행거에 얹혀 쉴새 없이 돌아가는 유리벌브.

그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근로자들의 손놀림.

대학 캠퍼스는 커녕 일반 공장보다도 더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폐품발생을 줄이자"는 구호가 벽면 곳곳에 붙어있고 각 분임조의
활동상황을 정리한 상황판도 눈에 띈다.

삼성전관이 야심적으로 추진하는 원가절감운동 "한사랑 200"의 현장이다.

부산사업장이 내건 올해 원가절감 목표는 무려 2천억원.

연간 매출액 (2조원)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같은 초내핍경영이 시작된 계기는 브라운관의 국제가격이 지난해
말부터 급격한 하락세로 반전됐기 때문.

세계적인 공급과잉으로 개당 1백56달러하던 15인치 CDT (공업용)가
1백3달러대로 내려 앉았다.

TV브라운관 (민수용)도 평균 10% 정도 가격이 떨어졌다.

연말까지 가격 하락으로 예상되는 순손실 비용만 2천20억억원이다.

"이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지난해 순이익 1천6백22억원을 고스란히 까먹을
판이었죠" (황규병 공장장.전무).

그러나 위기는 또다른 기회를 제공하는 법.

부산공장의 근로자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 난국을 타개하고자
했다.

"매출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재고가 공장 여기저기 쌓이고 있었으니까요" (변재태 경영지원팀장).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가격하락분 만큼 투입비용을 줄이는 수 밖에 없었다.

매출이 2천억원 줄어드는 만큼 원가를 줄이면 되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언뜻 생각하면 엉뚱하고 황당하지만 부산공장 노사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나갔다.

원가절감운동의 양대축은 TPI와 TPM제도다.

TPI가 회사측에서 목표를 세운 절감전략이라면 (톱다운식), TPM은
근로자들이 자율적으로 설정한 (바텀업식) 원가절감운동이다.

브라운관 사업부내 종합상황실은 그 결정판이다.

1백평 규모의 이 사무실엔 원가절감을 위한 각 사업부별 목표와 달성
여부를 체크한 도표와 그림, 숫자들이 가득차 있다.

스크린 세척공정에선 브라운관 세척기의 노즐에 센서를 달아 필요할 때만
물을 분사하도록 했다.

제작 2파트는 용수용 파이프의 굵기를 단계적으로 줄여 물을 절약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물 사용량은 1일 2만2천톤에서 9천8백톤으로 줄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번 쓰고 버리던 용접봉을 재가공해 7번이나 재활용하도록 했다.

일본 아사히글라스에서 들어오는 팔레트도 규격에 맞게 잘라 개당
8천원을 절약했다.

전량 수입하는 마스크의 불량률을 종전 4%에서 1%로 줄이면 (폐품
박멸운동) 연간 1백80억원이 남는다.

에너지 비용 절감도 돋보인다.

에너지 다소비설비를 개선하고 폐열회수장치를 설치해 연료사용량을
줄이는 것.

이를 통해 에너지 부문에서만 50억원 절약이 가능하다.

어느 한부서만이 아니다.

사업장 내 전 부서, 2백50여개 분임조가 하나같이 월 계획과 연간 계획을
갖고 있다.

비용과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도저히 달성될 것 같지 않았던 목표들이 하나둘씩 이루어졌다.

지난 4월말 현재 이렇게 절약된 비용만 3백28억원.

"점차 가속도가 붙고 있어 연말까지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것같다"는 게 경영지원팀 김상주 과장의 전언이다.

"TPM의 핵심은 근로자들의 자발적인 제안과 개선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아무리 강요해도 실제 작업하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면
혁신은 한계에 부닺히고 마는 법이거든요".

황규병 공장장 (전무)은 "언제나 기본은 사람, 그 자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부산공장이 초내핍경영에 돌입했으면서도 근로자들의 복리후생비는
오히려 늘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브라운관 감산에 이어 전체 8개 라인중 2개라인을 세우는 아픔까지
겪었던 부산공장은 이제 새로운 혁신에 돌입했다.

원가절감을 출발점으로 한 혁신운동은 이제 생산성향상이란 최종 골인
지점을 향해 전력질주 하고 있는 것이다.

< 부산 = 이의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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