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인간에게 가장 유용한 발명품의 하나다.

물물교환의 번거로움을 극복해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돈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고려시대에 나온 저술들에도 돈의 그러한 양면성은 나타난다.

1097년 (숙종2) 의천은 엽전을 만들어 쓰라고 왕에게 건의한 "화폐론"
에서 긍정론을 폈다.

돈은 어디든지 흘러다니고 상하 백성에게 두루 퍼져 날마다 써도
무디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 건의로 한국 최초의 엽전인 해동통보가 만들어졌다.

한편 고려 무신란 직후인 12세기말에 임춘이 지은 가전체 작품인
"공방전"에서는 부정론이 제기된다.

공방이 벼슬을 하자 권세를 잡고 뇌물을 거둬들였다.

농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장사치의 이익만 앞세워 나라를 좀먹고
백성에게 해를 끼쳤다.

그러다가 벼슬자리에서 쫓겨났으면서도 뉘우침이 없이 도리어 자기가
나라의 재정을 풍족하게 한 공적이 있다고 가장했다.

그 결과 자손마저 세상에서 욕을 먹고 죄를 지어 처형되기도 했다.

이와같은 "공방전"의 줄거리처럼 인간은 돈이 교환수단이라는 원래의
의미를 망각한채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 잔영은 "돈이 양반"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수 있다"는 돈의 위력을
강조한 전래의 속담에서 찾아진다.

반면에 인간을 오욕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할 소지가 많은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경구도 적지 않다.

고려말엽 최영 장군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는가 하면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났다"는 격언도 있다.

그런데도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인들의 돈 만능 요지경 작태가 속속
백일하에 드러나 국민들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 주고있다.

엊그제 한 가난한 노동자가 투숙한 고층호텔에서 백주대로에 수천장의
지폐를 뿌리면서 타락한 현실정치에 항의하는 해프닝을 벌였다고 한다.

또 길을 가던 행인들 마져도 웬 돈 벼락이냐면서 돈을 줍는데
혈안이었다는 것이다.

흥미를 끄는 사건이기에 앞서 한국인의 가치관 실종을 확연히 드러내준
해프닝이라는 생각이 가슴을 메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