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자동차업계의 노사관계가 공존공생의 협력구도로 변하고 있다.

90년대초 거세게 불어닥친 경기불황을 이겨내기위해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일본 자동차업계의 거센 도전에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감원과 공장정리라는
최악의 상황을 겪었던 구미 자동차업계는 새로운 협력 프로그램으로 생산성
향상을 꾀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맞고 있다.

구미 자동차업계에 불고 있는 혁신적인 새바람은 한마디로 협력을 통한
노동환경 개선이 요체다.

물론 각 기업마다 그 모습은 다양하다.

볼보사의 우데발라공장처럼 노동조건을 개선키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없애기도 하고 벤츠사같이 팀제 도입이 활발한 곳도 있다.

독일 BMW사와 같이 잔업수당이 없는 대신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기업도 있다.

하지만 핵심은 한가지다.

경쟁력강화를 위해 "효율성 증가"를 요구하는 사측과 "고용보장과 노동
조건개선"을 주장하는 노측이 서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효율성 강조가 노동조건을 악화시켜서는 안되고 마찬가지로 노동조건
개선이 효율성을 떨어뜨려서도 안된다는 원칙을 철저히 유지하면서 공생을
모색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흐름은 무엇보다도 경영위기를 공동으로 극복키위한 "생존전략"에서
비롯됐다.

"기업이 없으면 노도 사도 없다"는 말이 그냥 나온 너스레가 아니다.

노와 사는 감원과 공장정리라는 수동적인 대응에 머물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협력구도로 방향을 튼 것이다.

벤츠사 진델핑겐공장의 우베 로렌츠 부사장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기위한
노력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모두가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투자다"라고 사측의 변화를 설명했다.

노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난 95년에는 IG-Metall(독일금속노조) 클라우스 츠비켈 의장이 "30만명
정도의 고령 실업자 취업을 보장하면 노동조합은 매년 물가상승률분만큼의
임금인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힘을 앞세우는 대신 사측과 타협점을 제시한 것이다.

이같은 노사 양측의 태도변화를 계기로 각 사업장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노사협약이 맺어졌다.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인상을 유보하기도 했다.

노동시간의 유연화에 대한 대안도 모색됐다.

노사 공동의 노력이 곳곳에서 알찬 결실로 나타난 것이다.

그 결과는 이제 다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90년이후 일본 자동차의 유럽 공략이 집요하게 지속된데다 경기불황으로
침체의 늪에 빠졌던 유럽 자동차업계가 최근 회복세로 돌아선 것이다.

실제로 89년 1천5백69만대에 달하던 유럽업계의 자동차 생산대수는 93년
에는 1천2백만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93년이후 서서히 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1천4백61만대로 완연한
상승세를 보였다.

경기불황을 노사협력으로 헤쳐나온 지혜가 서서히 빛을 발한 셈이다.

다운사이징이나 아웃소싱으로 고용불안이 여전히 심각한 미국도 이같은
노사협력의 기본관점은 동일하다.

물론 지난해에도 감원정책에 반발한 부품공장의 파업으로 GM사의 경우
생산 차질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빅3로 대표되는 미국 자동차산업과 UAW
(전미자동차노동조합)는 지난해 새로운 협약을 체결했다.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고용안정.

포드와 GM 노사는 앞으로 3년간 현 조합원의 95%에 대한 고용보장을 합의
하면서 재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해있던 구미자동차 업계가 "노사협력"이란 무기를
들고 다시 세계무대를 향해 뛰고 있는 것이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