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교섭을 둘러싼 노사대립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단체협약에 분쟁
처리절차를 명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자문기구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27일 서울 중소기업은행 대강당
에서 개최한 제3차 공개토론회에서 중앙대학교 정연앙 교수는 "우리의 교섭
문화, 어떻게 바로세워야 하나"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분쟁처리절차를 정해
두면 의견대립을 공정한 조정과 중재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노조집행부가
바뀌어도 교섭 원칙과 관행을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한국노총 남일삼 조직강화본부장, 민주노총 김태현 기획
국장, 대한상공회의소 이영록 이사, 롯데그룹 민승기 감사, 한국일보 이병완
논설위원, 경실련 김장호 노사관계특위위원장 등이 보조발제자로 나섰다.

정연앙 중앙대 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한다.

< 정리=김광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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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사관계는 사실상 87년 6.29선언 이후부터 시작됐다.

겨우 10년 역사를 갖게 된 셈이다.

이 기간동안 우리는 미래지향적 노사관계를 정착하기보다 누적된 문제를
둘러싼 노사간 힘겨루기식 단체교섭을 했다.

무엇보다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부족이 문제였다.

사용자측은 노동조합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가능하면 노조가 없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노조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용자들은 단체교섭에도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

노조의 경우 단체교섭 경험과 노하우를 갖고 있지 못했으며 조합원들은
노조가 단체교섭을 통해 모든 불만을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다보니 단체교섭을 노조가 회사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는 과정으로만
이해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노사간에 믿음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회사는 종업원과 노조가 먼저 생산성을 끌어올려주면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고 주장한 반면 노조는 회사가 처우를 개선해주면 생산성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맞섰다.

노동법이 바뀐 뒤에는 노조의 재정자립이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변수로 등장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조항이 유예되는 5년간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노조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것이다.

이에 대비, 기금을 마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보다는 당사자인 노조가 경조사비 지출을 없앤다든지 조합비를
현실화하는 등 적극적인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 노동법에 도입된 조정전치주의도 단체교섭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전에는 경험 부족으로 노사간의 사소한 견해차이가 파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새로 조정전치주의를 도입, 조정을 거치지 않고는 쟁의
행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함에 따라 성급한 쟁의행위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조정전치주의는 자칫 노사당사자들로 하여금 단체교섭에 불성실
하게 임하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노조 집행부의 입지가 약하고 회사측 교섭대표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강한 경우에는 노사당사자주의에 의한 단체교섭이
흔들릴 수 있다.

노동법이 바뀐뒤 노조가 교섭력 강화를 겨냥,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새로운 양상이다.

공동교섭이 기본목적은 교섭비용 절감 및 교섭효율 제고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공동교섭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이같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공동교섭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려면 외부노동시장이 발달돼 직종별로
표준적 임금수준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단체교섭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교섭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단체교섭의 원칙과 절차에 관한 노사간의 합의가 필요하다.

원칙이 확립되어 있으면 교섭 초기부터 양측이 현실성 있는 요구안을
제시하게 돼 교섭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교섭 절차에 관해 사전에 합의해 두면 이견이 있을 때마다 파업이나 직장
폐쇄로 치닫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노조집행부가 교섭권 뿐 아니라 새 노동법에 명시된대로 체결권까지 갖는
다면 교섭효율이 높아질 수 있다.

이를 위해 노조는 조직관리를 혁신하고 리더십을 확립해야 한다.

노조는 간부들의 관심사보다 조합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또 단체교섭에 들어가기 전에 조합원들의 의견을 철저히 수렴해 현실성
있는 요구안을 제시해야 한다.

노사협의회를 예비교섭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모든 문제를 단체교섭을 통해 해결하려 들면 교섭기간이 길어지고 비용도
많이 든다.

노사협의회를 열어 단체교섭 상정안건을 결정하고 협의회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들은 가능한한 단체교섭에 올리지 않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위원회의 조정기능도 활성화해야 한다.

노사공동으로 신입사원에 대한 노사관계교육을 적극 실시함으로써 올바른
노조관을 심어주는 것도 교섭효율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회사는 모든 노사문제를 노조와의 관계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미리 현장관리자들을 통해 종업원들의 불만을 해소해야 한다.

앞으로의 노사관계는 현장조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 책임자는 현장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노조측에서도 대의원들의 역할을 재정립, 현장노사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현장관리자의 파트너가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장 차원의 선행노무관리체제가 확립되면 단체교섭의 이슈가 사전에
정리돼 교섭의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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