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어느 연구모임에서 금융실명제 보완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실명제의 본질이나 성과 등을 따져보다 세금문제로 얘기가 번졌다.

금융소득에 대한 종합과세문제가 아니라 그냥 세금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

요지는 개인사업자들이 부가가치세 소득세 등을 사실대로 신고해도 세무
당국이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외형이 일정수준을 유지해오던 영업장이 주인이 바뀌면서 있는 그대로
신고하다보니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은 뻔한 일이다.

동종 사업자들의 불만을 사는 것은 물론 세무당국으로서도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세무당국으로서는 비슷한 사업장의 세금을 같이 높여야만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과거에는 눈감아 주었다는 얘기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화된 이같은 얘기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지난 26일부터 이틀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OECD각료이사회를 계기로 어수선하기만 한
우리 사회를 반추해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난해말 OECD에 가입했다는 사실 자체가 쑥스러울 정도로 지금의
우리사회는 어지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OECD얘기만 나오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자괴심을 느끼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같다.

차라리 가입이나 하지 않았으면 망신을 덜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보사태를 비롯해서 대통령 아들의 국정개입, 대선자금 파문 등 후진국
에서나 있을 법한 상식밖의 사건들이 줄줄이 터지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요지경속과 같은 정치권의 돈거래는 그렇다치더라도 민생은 뒷전인채
상대방 욕하기에만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행태를,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보고 있으려니 속이 터지고 울화가 치민다.

대권주자들은 왜그리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다음을 위해 이름값을 높여 놓자는 심산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정치고 당연한게 아니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는사이
국력 낭비가 얼마이며 이로 인한 부작용은 어느정도 클까는 셈하기가 어렵지
않다.

국정의 중심이 없어진거나 마찬가지 아니냐는 세간의 여론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에는 별다른 변화의 조짐마저 잡히지 않고 오히려 대선
자금을 공개한다, 안한다로 혼란을 자초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속이 들여다 보이는 강력한 사정은 왜 하필이면 이때냐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는 어떤가.

불경기의 어려움은 여전하다.

기업들은 부도가 날까봐 전전긍긍이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금융권은 자기몫 챙기기에 바빠 돈을 움켜쥐고 있다고 한다.

수요자 입장에서 모든 것을 고치고 개선하겠다는 금융개혁은 관할권
싸움이 핵심으로 등장했다.

중장기 과제라 했던 중앙은행독립문제와 관련해 감독권행사를 놓고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맞서 있다.

어느쪽이 옳고 그름을 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꼭 서둘러야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개혁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지만 임기를 채 1년도 못남겨
놓은 현 정부가 그같이 중요한 일을 황급히 처리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
르겠다는 반응들이다.

그렇다고 기업이나 일반국민들은 문제가 없는가.

자기 일에 충실하기보다는 남의 잘못을 탓하는 오늘의 세태는 결코 가벼워
보이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연유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때문에 선진사회로 가는 가장 근본적인 과제는 역시 의식구조의 개혁이라는
결론도 가능하다.

이번 OECD각료이사회에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정부대표인 강경식 부총리를 비롯 유종하 외무 임창렬 통산부장관 등의
감회도 여느 국제회의와는 다르리라 생각된다.

내로라 하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자부심도 가질만 하다.

그러나 OECD가입이 너무 빨랐던게 아니냐는 비판론도 사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회원국으로서 그려보는 우리의 자화상이 너무 일그러져 있기 때문이다.

한보사태 등으로 국제기관들이 한국의 신용도를 한단계씩 낮추는 수모를
겪고 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번 각료이사회에서는 뇌물방지협약을 체결키로 합의하고 회원국들의
규제개혁도 촉진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뇌물의 경우 외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 적용하는 것이지만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요즈음 같아서는 우리를 겨냥한 것같은 착각도 느낀다.

그러나 오히려 OECD가입이 잘 됐다는 생각도 해 본다.

애시당초 선진국으로 대접받기 보다 보고 듣고 배우자는 동기가 컸기
때문에 이 기회에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점에서다.

선진국이 되는 조건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소득이 높아야 되고, 민주화가 잘 돼 있어야 하고, 문화수준도 높아야
하고...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

제아무리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해도 예측하기 어려운 질서없는 사회는
국민생활 자체가 피곤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