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림동 녹두거리.

인근 서울대생과 고시생들의 낭만과 애환이 서린 곳이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김치에 소주를 마시며 대학의 낭만을 만끽했고
고시생들은 "현대판 입신양명"을 꿈꿨다.

한패가 되어 고래고래 노래부르고 놀다 돈이 없으면 신분증이나 시계라도
맡길수 있었다.

또 값싼 감자탕보다는 독재타도를 안주삼던 민주화투사들의 거리였다.

이제는 모두 녹두의 전설이 됐다.

여느 대학가가 그렇듯이 녹두거리에도 낭만은 자취를 감추고 번뜩이는
상혼이 득세하고 있다.

"신림동판 라스베가스"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녹두집등 허름한 막걸리집에서 출발한 50m 남짓한 거리도 각종 유흥업소들
이 자리를 틀면서 신림9동 고시촌을 따라 골목마다 술집 비디오방 노래방들
이 진출해 있다.

감자탕시켜 막걸리 마시던 허름한 술집들도 호프집 소주방 고급카페
일색으로 바꼈다.

밤 9시 30분.

초저녁의 한산함이 사라지고 녹두거리가 활기를 띠는 시간이다.

이즈음 주인공들은 서울대생들이다.

맨처음 몰려드는 곳이 녹두거리앞 책방 "그날이 오면".

책방앞에 설치된 메모판에서 약속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슬리퍼와 추리닝바지로 무장한(?) 고시생들도 하나둘씩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밤 11시.

녹두거리에 원정온 패들이 늘면서 녹두거리가 본격적으로 활기를 띠는
시간이다.

유흥에 일찍 눈뜬 고등학생이나 재수생인듯한 패들이 몰려든다.

신촌 홍대앞에 비해 물(?)은 좋지 않지만 이곳 술집들이 대부분 새벽까지
영업을 하고 값도 싸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고시생들도 부쩍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미 고시원 근처까지 파고든 술집에서 들리는 소음도 고시생들을 불러내기
시작한다.

녹두거리 한 주점주인은 "아르바이트 활성화로 지갑이 두툼해진 서울대생들
은 다른 곳으로 놀러 가고 고시생을 위시해 정체불명의 젊은패들이 대부분"
이라고 말했다.

인근 구로공단등에서 갈데가 없는 젊은패들이 "심야여업 단속이 없는
해방구" 녹두거리로 2차 3차를 위해 꾸역꾸역 몰려든다.

자정을 넘기면서 술집들이 셔터문을 내린다.

간간히 후미진 곳에서 토악질을 해대는 이들을 빼면 거리가 한산해졌다.

이 거리의 한 카페.

자정을 넘기자 젊은남녀들이 잇달아 들어왔다.

새벽 1시께는 이미 자리가 없을 정도.

새벽 2시께 직장인들과 젊은패들이 근처 노래방이나 당구장으로 빠져
나간다.

이제 고시생이나 재수생들이 대부분이다.

과중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들의 술문화는 대부분 "끝장을 보는 스타일".

녹두거리에 고시원 다음으로 많은 것이 비디오방.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고시생들의 스트레스 해소방이다.

신림9동에만도 300여개 고시원이 몰려 있다.

이곳 고시생들은 돌아눕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고시원 골방을 벗어나
비디오방에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때운다.

신촌 홍대 그리고 녹두거리.

이들 대학가의 낭만은 거리의 주인이 바뀌면서 사라지고 있다.

유흥가의 상혼에 밀려 대학인들이 주변인으로 전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직장인은 "예전의 녹두거리가 그리워 들렀는데 너무나 이상하게 변해
다시는 오고 싶지않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70년대 마로니에의 낭만, 80년대의 투쟁도 모두 사라지고 97년 여름
녹두거리의 밤은 검붉은 네온사인 가득한 세기말적 퇴폐만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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