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은 "석좌교수강좌"를 신설합니다.

국내 각 대학에 국제대학원이 다수 문을 열면서 국내 저명인사는 물론
세계유수대학의 저명한 교수 고위공직자들의 국내 강좌가 늘고 있습니다.

본란은 일반독자들도 이들의 강의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 첫번째로 폴란드 노조 숄리데리티를 이끌어 민주화를 실현한
레흐 바웬사 전폴란드 대통령의 강의를 싣습니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기대합니다.

< 편집자 >

======================================================================


[ 민주주의와 나의 삶 ]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민주주의 실현에 바친 나로서는 민주주의를 빼놓고
삶을 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내가 보기에는 아직까지 민주주의 체제보다 나은 체제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가 갖고 있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오직 한 장의
투표권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현명한 사람보다는 어리석은 사람이 더 많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결정이 유권자들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때
민주세계에서는 엄청난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말해 모든 결정이 현명한 판단력을 지닌 지성인들의 의지보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체제는 현재까지의 모든 정치제도 가운데
인간이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체제라는 점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는 "노"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로써 의견의
불일치나 반대의사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들로부터 "예스"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어느 정도의 깊이있는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리더십은 나치가 말하는 "슈퍼인간"이나 "정치적
천재"와는 다르다.

사실상 더 잘 알거나 더 현명하거나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신뢰는 잠정적이며 남용되기 쉽다.

일단 남용되면 신뢰는 비누거품처럼 날아가 버리며 지도자가 신뢰를 잃게
되면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지도자가 신뢰를 잃게 되는 주된 이유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부정부패에 빠지거나 신념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신뢰를 얻으려면 정직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이런 인식과 믿음을 주려면 평소생활에 어두운 면이 없어야
한다.

한 정치인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그의 지도자적 자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된다.

독재체제와 민주체제의 차이점은 정권의 구성형식과 통치방법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보다 근본적인 차이점은 각 체제가 인식하고 있는 인간존재의 본질에서
찾아야 한다.

독재체제는 인간을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반면에 자유의지의
구현을 제약하고 있다.

한마디로 독재체제는 인간을 동물과 같은 속성으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독재체제에도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기간의 효율성 확보에 유리하다.

그러나 독재체제는 인간을 억압하는데 치중하기 때문에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는 제공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체제는 인간의 장점은 사장시키고 단점만을 조장,
창의적인 행동보다는 타율적이고 일탈적인 행동에 빠져들게 한다.

이런 속성때문에 독재체제는 결과적으로 사회적 효율성을 저하시키고
부정부패를 만연시키며 인간을 타락시켜 버린다.

한마디로 독재체제의 가장 큰 단점은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얼핏 볼 때는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창의성과 자율성을 유도하고 강제 동원이
아닌 자발적인 분위기를 조성, 인간의 잠재역량을 발전시킨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체제는 인간에게 자신의 야망을 성취할 수 있는 더
나은 기회를 제공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인간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자율성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만 독재체제는 자생력의 빈곤으로 결국 자멸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부정직 불의 거짓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젊은이들은 세상을 단순한 잣대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바로 이런 단순성
때문에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의 동질성이 동일한 행동양식을 낳는 것은 아니다.

행동양식을 결정짓는 변수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할 결의가 되어 있느냐,
않느냐에 내재돼 있다.

희생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과 희생을 기피하는 사람이 사회적 불의에
대응하는 행동양식은 전혀 다르다.

공산주의체제하의 폴란드에서도 두가지 상반된 행동양식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선 하나는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세상에 대충 맞춰 살면 손해
볼 일도 적고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와는 반대되는 행동양식은 옳지 못한 것에 분명하게 도전하는 저항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정의감이야말로 인생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저항적인
행동을 통해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자유노조의 결성을 주도했고 지난 80년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상
초유로 공인된 "솔리대리티"라는 자유노조를 결성, 투쟁에 앞장서 왔다.

지난 89년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한 이후에도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개혁을 단행하고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라고 판단, 지난 90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첫번째 대통령으로서도 국가의 맨 앞에
나서서 투쟁을 계속했다.

5년간에 걸친 대통령 임기중에는 외국 군대가 철수했으며 정치.경제적
변화를 추진, 이제는 원점으로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진전됐다.

나는 결코 개인을 위해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투쟁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모든 폴란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해왔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공유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있다.

정치인의 임무가 국민들의 기대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라면 가장 가치있는
정치인의 역할은 봉사다.

그러나 이렇게 명백한 진리가 잘 통하지 않고 있다.

오늘날 인기를 노리는 TV정치인들은 지나치게 많은 반면 국민에게 봉사
하려는 비전의 정치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인간적 희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유권자들은 그런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표를 줄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내가 변화를 기치로 내걸었을 때 폴란드 국민은 나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내가 변화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거론하기 시작하자 국민은
나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가장 어려웠던 마지막 투쟁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였다.

나는 싸웠고 이겼다.

내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것을 모두 다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말에 놀랄 것이다.

실제로 이길 수도 있었다.

공산주의자들을 감옥에 격리시켜 놓는 방법도 있을 수 있었다.

아니면 비밀리에 공산주의자들과 권력분배 협상을 하거나 공산주의자들의
구미에 맞는 정치적 양보를 할 수도 있었다.

또 인기위주의 기만적인 선거운동을 했었더라면 권력을 계속 보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부정한 방법들이 나의 신념과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진정한 민주주의 승리를 위해 패배를 달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주의 규칙을 파괴하고 승리하는 것보다는 패배하더라도 규칙을 준수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3일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