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예의없고 무례한 발언에 영신은 기분이 나쁘다.

아무리 훌륭한 관능미의 왕자라도 이런 언어행동에는 가차없는 것이
김영신의 날카로운 자존심이다.

당장 벼락이 떨어져도 자기의 높은 콧대를 결코 꺾을 수는 없다.

"그래요. 여기 떨어뜨려 놓고 갈게, 혼자 떨어져요.

그렇게 야만적인 남자라면 나는 흥미없으니까.

알겠어요? 야만적인 본능주의자!"

그녀는 끝에 가서 억양을 부드럽게 눙쳤지만 지코치는 자기의 신분도
모르고 한마디 더 야만적인 발언을 한다.

워낙 그는 교양과는 거리가 먼 남자라 이런 말이 불쑥 튀어 나온 거다.

"여자들이 남자를 벌어먹이고, 그래도 남자가 기분이 변하면 언제든지
여자네 집에 올때 들고온 트렁크 하나만 달랑 들고 나가면 다시는 그
남자를 찾지 않고 혼자서 살거나 다른 남자를 찾는 곳"

"지코치님, 여러가지로 마음에 드시지요? 저는 이만 물러가겠사오니
왕자님께서는 믿음직스러운 육체미를 흔들며 잘 지내보시지요"

그녀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면서 그에게는 눈길도 안 준다.

"이봐요 누님! 여보! 마누라! 이봐요, 농담도 못해요"

지코치는 바짝 따라붙으며 그녀가 잡은 택시속으로 비비고 들어간다.

화가 잔뜩 난 영신은 저능아를 사귄 자기에게 침을 탁탁 뱉고싶은
심정이다.

이렇게도 무례한 놈이 도대체 어디 있는가?

"이보세요, 이 머나먼 나라에서 나를 이 여자천지인 지옥에 두고 혼자
달아나면 나는 영원히 국제미아가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자 영신이 속으로 쿡쿡 웃는다.

혼자서 택시를 타고 그들이 묵는 호텔만 대면 데려다 줄 것을.

바보같으니.

그녀는 그의 소년스러움에 노여움에 찬 조소가 터지는 것을 겨우 참는다.

"이봐요, 허니. 이러면 어떡해요? 나는 누님만 믿고 호텔을 나와서
거기가 어딘지 몰라요"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

그녀는 그와 외면하고 돌아앉은채, "택시기사 양반, 빅토리아 호텔로
가요" 하고 찬바람을 낸다.

이 여자는 어린 여자들처럼 성질이 보통이 아니구나.

잘 못 하다간 혼나겠다.

간통죄로 쇠고랑을 차기 전에 먼저 국제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얌전하게
입닥치고 따라 다니자.

멋도 모르고 대낮에 또 한판 그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일행에서 빠지려고
했는데 전부 다 도로아미타불이다.

정신 바짝 차려서 김영신의 기분에 들도록 노력하자.

"누님 잘못했어유. 다시는 그따위 입 놀리면 아구통을 돌리겠어요.

내가 스스로 말입니다.

하자는 대로 얌전히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게유"

그는 10대의 똘만이로 돌아가서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울먹이는 소리로
사과한다.

그러나 그런 유치한 사고를 하는 인간이 지영웅의 본색인 것이다.

터프가이의 겉모습을 한 지극히 나약한 경제동물인 거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