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무역회사 김부장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큰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아름다운 몸매를 만들어야 한다며 뜬금없이 다이어트에 들어간 것.

공부는 아예 뒷전으로 제쳐 놓았다.

대신 피부미용학원이나 에어로빅 교습소를 하루가 멀다하고 들락거린다.

훌륭한 몸매와 얼굴만 갖추면 부와 명예를 한번에 거머쥘수 있는데 골치
아프게 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그녀의 장차 목표는 당연히 국내 최고 모델이 되는 것.

얼마전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열리는 각종 미인대회가 미스코리아대회를
비롯해 무려 60가지가 넘는다는 통계자료가 발표된 적이 있다.

최근에는 모델들의 생활상을 담은 트렌디드라마 "모델"이 모방송사에 의해
제작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이는 모델이나 배우 탤런트 등 대중의 화려한 조명을 받는 직업에 대한
우리사회의 선호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신세대들이 농담처럼 주고 받는 "과거 있는 여자는 용서할수 있어도 못생긴
여자는 용서할수 없다"는 말속에도 은연중 이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게다가 광고시장의 발달로 CF한편으로 간단하게 몇억을 챙기는 억대스타의
등장은 모델지망생들에겐 장밋빛 미래에 대한 보증수표나 다름없는 셈이
됐다.

이러다 보니 모델관련 산업도 무시못할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모델사업자협회 등 관련단체에서도 아직 정확한 시장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모델이 광고주로부터 받는 광고수입과 각종 의상비 등을 모두
합치면 연간 시장규모가 적어도 1조~2조원에 이를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
의 추산이다.

지난해 신문 잡지 TV 라디오 등 4대 매체의 광고시장 규모가 4조9천억원
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전체광고시장의 20~30%에 육박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올 미스코리아대회에 참가한 후보들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들은 화장 머리치장 각종 의상비 등에 개인당 적게는 7백만원에서 많게는
2천5백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화장및 머리치장 각종 의상비 등에 쓰인 것으로 성형수술이나 치아
교정에 들이는 비용은 하나도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서울의 신촌이나 압구정동의 유명미용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나아가 "본미용실 출신이 무슨대회에 입상했다"는 광고로 후보들을 끌어
들이고 있기까지 한다.

한 후보는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입상만 하면 영화나 방송
등에 출연할수 있는 길이 절로 열리므로 이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모델산업의 팽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정상급 모델 이소라 오미란 이선진등을 배출한 모델라인의 이재연 회장은
"일단 모델이 되기만 하면 부와 명예가 저저절로 찾아오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그러나 진정한 모델이 되기 위해선 철저한 자기관리
와 전문직업인이라는 프로정신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회장은 또 "모델이 되기 위해선 무조건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릇된 풍토"라며 "지정된 아카데미에서 3~4개월 정도의 기초소양교육만
이수하면 큰 돈이 따로 필요없다"고 강조한다.

< 김재창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