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라니, 얼마나 유머러스한 대사인가? 그는 가끔 자기가 말을
잘 한다고 스스로 기고만장해질 때가 있다.

이 기분파 친구, 지금 그는 천국의 한 가운데 있다.

"나의 아버지가 얼마나 까다롭고 지혜롭고 명쾌한 분인줄 알아요?"

그렇구나. 이 여자에게는 또 그러한 복병이 숨어 있겠구나!

세상에 수월한 상대가 어디 있나?

내가 내몸 가지고 마음대로 하는 것처럼 그렇게 모두 엉망으로 질서도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가는 놈도 세상에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의외의 힘든 상대를 만나서 권옥경이 때처럼 피를 흘릴 것 같다.

권옥경의 부자 아버지는 깡패를 사서 죽여 놓는다고 가끔 공갈 협박을
쳤지 않은가?

정말이지 부자들은 징그러운 치들이고 안하무인이다.

지코치의 자동차에 대한 수수께끼를 푼 김영신은 이제 그에 대해서
별 큰 의문점은 사라졌지만 그 상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는데에는
아직도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나 뭐 지난날의 여자라면 그녀가 어떤 여자든 그것이 무슨 문제인가?

내가 그에 의해서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의 가변성을 믿는 그녀는 결코 그와의 사이도 그런 허망한 욕망같은
것은 품지 말자고 생각한다.

젊은 남자가 무엇 때문에 20년이나 연상의 마누라와 일생 꾸벅꾸벅 살아
주겠는가?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더욱 가열하여 비정상으로 타오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브라질에 도착하여 리우데자네이루에 여장을 풀자 둘이서만
시내관광을 간다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사실 민영대는 아름다운 김영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코치라
불리는 호남이 그녀의 애인이라는 추측이 굳어지자 얼음같이 냉랭하게
그녀를 대하기 시작했다.

"가이드가 우리 사이를 눈치챘나봐"

둘이 점심을 먹기 위해 코파카바나 해변에 있는 중국집에 마주앉자
김영신이 걱정스레 말한다.

"그 여우같은 인간, 나는 이미 그 치가 누님에게 호감 가진줄 알았어.
나에게 자꾸 누님의 인포메이션을 알려고 살살거렸거든요. 밥맛 없는
불여우같은 녀석"

그러고 보니 민가이드는 여우의 얼굴을 닮았다.

하는 행동도 그랬고 눈치를 살살 보면서 눈웃음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우다.

자기 남편을 아주 많이 닮았다.

"모른체 해요. 혹시 우리 그이와 아는 사이인지도 몰라요. 그이가
여행사에 오래 근무해서 알 수도 있어요. 이 여행사는 우리 식구가 잘
이용하는 회사니까요"

"남편이 여행사에 근무했다구요?"

"네. 나하고 결혼하기 전에 이 여행사의 홍보부 쪽에서 일했어요. 대학을
나오고 3년쯤 된 신입사원이 나를 골프장에서 만나자 곧 프로포즈했지요.
나는 그때 이혼하고 혼자 사는 독신녀였구요. 그이 때문에 이혼한 건
아니고 퍽 자유로운 입장이었는데, 다섯살이나 연하의 남자가 목숨걸고
덤벼든 케이스였지요"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