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에 따르면 1441년 5월19일 장영실이 측우기를 발명했다.

이날 세종은 "근래 세자(문종)가 한발을 우려해 비가 온후에 빗물이
땅에 들어간 정도를 알고자 땅을 파봤으나 그 분수를 정확히 알수 없어
동기를 만들어 궁중에서 비가 온후의 빗물의 심천을 시험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는 이보다 2백여년이나 늦은 1639년에야 이탈리아의 베네데로
카스텔리가 측우기를 가지고 빗물의 양을 재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선조들의 과학정신을 오늘에 되살리기 위해 지난 57년 제19차
국무회의에서 매년 5월19일을 "발명의 날"로 정하기로 의결했다.

겨레과학의 유산으로는 측우기외에 금속활자나 거북선 등이 있지만
측우기만이 발명자가 알려져 측우기가 발명된 날이 발명의 날로 낙점받았다.

그러다 73년에 발명의 날은 상공의 날로 통폐합되면서 발명에 대한
국민의 열기도 서서히 식어갔다.

82년 한국특허협회가 한국발명특허협회로 확대개편되면서 발명의 날이
부활됐지만 이전같이 주목받지는 못했다.

발명인들은 발명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부활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