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맏딸의 졸업식을 보러 같다가 잠시 미국에 머물 때였다.

프랑스의 옛 공중가구를 보러 뉴욕 소호에 있는 프랑스 궁중기구점에
갔다.

여주인은 한 가구를 가리키며 루이왕조시대의 가구라고 했다.

그 가구 이외의 다른 가구들에서도 넉넉한 생활의 품같은 느낌을 받았다.

입구에 놓인 스토브처럼낮으막하고 길쭉한 두 폭의 가리개는 가는 철사로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 같은 방으로 되어 있었다.

두 개의 방 중 한쪽에는 융단처럼 아름다운 조록빛 이끼가 소복하게
차 있었고 다른 한쪽의 방에는 빛깔이 아름다운 단풍잎들이 소복하게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보며 문득 60년대에 미국인들이 파리를 안내한 책자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미국인들은 마음속에 두 개의 고향을 갖고 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고 다른 하나는 파리다"

프랑스인들은 추억을 예술로 떠내는데 탁월한 사람들인 것 같다.

프랑스 예술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은 바로 그런 데서 기인한 듯하다.

대서양 연안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은 오늘날 가장 미국화되어 자연스럽게
미국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날 또 우리는 소호에서 소스를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소스가게에 갔다.

원형의 기둥을 둘러싼 소스판매대에 놓인, 농염한 질감이 묵직한 느낌을
주는 소스병들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빛깔은 적당한 액체와 아울러 독특한 빛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

독특하고 고유한 향취에 이끌리듯 나는 시식용 테이블에서 빵에다 바른
소스를 건네받아 먹어 보았다.

그 빵을 먹는 동안 나에겐 놀라운 변화가 왔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토록 이질감을 주던 미국 문화권의 느낌이
사라지고 묘한 동질감이 생겨났다.

오래된 것, 옛사람들의 따뜻하고 뭐라 말로 표현할수 없는 정겨움과
세월의 흔적이 남긴 것들은 동.서양 어디의 물품이든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옛것에는 이처럼 현대인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다독이는 마력이 숨어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