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몇가지 모임이나 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물론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친목이나 우정을 나누는 필자 나름대로의 크고 작은 모임이 여럿 있지만
내가 가장 애착을 느끼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모임은 우리회사 동우회의
하나인 "화승 산악회"이다.

입사 이래 많은 동우회들이 결성됐다가 사라지곤 했지만 "화승 산악회"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승 가족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우리 산악회는 일정한 규약이나
회칙 없이 자유로움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관계 계열사나 협력 업체의 등산 애호가들도 참여해 예정에도
없던 야유회나 수련회가 되기도 한다.

최근 몇년 전부터 우리들은 연말이 되면 한해를 마무리 짓는 연례행사로
큰 배낭을 꾸려 메고 설악산 대청봉을 찾고 있다.

정상을 향해 밤새 올라 새해 첫날 동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얼굴을 말끔히 씻고 의기양양한 또 다른 모습의 태양을 가슴 설레며
맞이하곤 했다.

지난해 연말에도 우리들은 어김없이 설악산으로 향했고 정월 초하루
새벽 한시에 20명이 조 편성을 끝내고 오색 약수를 출발했다.

모두들 머리에 헤드램프를 쓰고 성지순례 대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채
발걸음을 조심하면서 앞만 향해 올라갔다.

영하 15도 안팎의 강추위에 땀을 흘리며 칠부 능선에 도착했고 한숨을
돌리면서 올려다 본 하늘은 별도 달도 아닌 캄캄하게 뒤덮힌 두터운
구름뿐.

오늘따라 기상대 예보가 왜 이렇게 정확한지 알 수 없다는 푸념을 뒤로
한 채 우리 팀은 지친 여직원들을 부축하면서 정상을 향했다.

시작을 했으면 꼭 끝을 보고마는 배달의 자손임을 자부하며.

그러나 먼저 간 선발대로부터의 무선통신은 점점 다급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심한 눈보라로 더 이상의 산행이 불가능하다는 안타까운 목소리만 계속
흘러나왔다.

결국 그날 우리는 이십여 미터 앞에서 정상을 포기한채 신년 아침을
맞이했고 다음해를 기약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산악회 회장은 김의형 과장 (아웃도어팀)이 맡고 있고 특히 총무 정대진
계장은 대학에서부터 클라이밍을 해온 베테랑이다.

대자연과 함께 또 사랑하는 동료들과 함께 서로를 격려하고 사랑을
나누는 이 모임을 나는 언제까지나 아끼고 소중히 여길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