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장마철을 앞둔 날이었다.

지붕의 물받이통이 나무잎등으로 막히지 않았는지 염려돼 아는 사람에게
올라가 봐달라고 부탁했다.

살펴보고 내려온 사람은 깨끗하더라며 다만 새가 홈통에 새끼를
까놓았는데 차마 손댈 수 없어 그냥 두었다고 했다.

나는 "에이구, 어미새 좁은 소견하고는. 곧 비가 퍼부을 텐데"라며
미물인 새의 좁은 생각을 탓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철은 왔다.

간간이 비가 내릴 때마다 새로 인한 내 걱정은 계속됐다.

그러나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가랑비 정도만 내릴 뿐 맑은 날이
지속됐다.

그 어미새가 새끼와 더불어 힘차게 날아가고도 남을 만큼 화창한 날이
이어졌다.

마침내 우리는 푸르디 푸른 나무가지 위에 가볍게 얹혀 있는 새끼새를
발견했고,그와 함께 창밖으로 북상하는 무거운 구름의 요동을 보았다.

그 비는 온세상 물을 모두 몰아온 듯 세차게 퍼부었다.

언덕 고랑 비탈은 물론 주위의 도로까지 뒤덮었다.

이곳저곳에서 홍수 소식이 들렸다.

물난리가 지나가고 나서 나는 비로서 내가 혼자 나무랐던 그 어미새의
통찰력과 예지력에 대해 생각했다.

한낱 새에 지나지 않건만 얼마나 현명한가.

당분간 큰비가 오지 않을 것을 알고 새끼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곳에 놓아두고 지킨 깊은 생각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사람의 상식이란 대체 무엇인가.

자연의 위대한 섭리 앞에서 사람의 지식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큰소리치는 사람일수록 실제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봄가뭄 끝에 비가 내렸다.

갑작스레 너무 많이 오는 게 아닌가 싶게 쏟아지더니 하늘은 다시
맑게 개이고 밝고 따뜻한 5월 햇살 속에 오동나무 꽃이 환하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인지 도무지 구분할 수 없는
말과 일들로 가득찬 어지러운 세상에 아랑곳 없이 화창한 봄날 아름답게
날아올라 지저귀는 새를 보며 우리네 사람도 앞날을 내다보고 자신과
가족을 함께 돌보는 지혜를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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