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사와 산업디자인진흥원(KIDP)은 제4회 산업디자인의 날
(5월2일)을 기념, 지난달 25일 서울 혜화동 KIDP 중회의실에서 "불황극복과
경쟁력 제고의 열쇠로서 산업디자인"이란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순인 KIDP진흥본부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에는 김철호 LG전자상무,
이승근 공인산업디자인전문회사협회장, 강병길 숙명여대교수등이 참석,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의 현재와 발전방향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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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 사회 : 이순인 < KIDP 진흥본부장 >
<> 토론 : 김철호 < LG전자 상무이사 >
이승근 < 공인산업디자인전문회사협회장 >
강병길 < 숙명여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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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순인 본부장)=최근들어 국내 기업들이 산업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산업디자인이 경영의 핵심요소로 자리잡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이처럼 산업디자인이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강병길 교수=기업들의 생산양식 변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간에 기술과 조직 등 여러가지 조건이 평준화되면서 부가가치를 창출
하려면 끊임없이 남다른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진 것이 이를 대변해줍니다.

이 때문에 상품개발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산업디자인이 부각된 것입니다.

소비패턴이 달라진 것도 산업디자인이 중요시되고 있는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소득수준 향상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상품을 소비하는데서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는 소비자들이 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욕구를 따라가려는 기업들이 산업디자인을 적극 활용
하게 된 것이지요.

이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시장구조가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바뀌면서 산업디자인이 기업들의 부가가치 창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회=우리나라 기업들은 산업디자인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현장에 계신 김철호상무께 들어 볼까요.

<>김철호 상무=기업들은 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경영혁신을 꾀하고 있지요.

이를위해 그동안은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데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나 시장상황이 급변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쓴잔을 마시고 있습니다.

더이상 생산성 향상을 통한 가격경쟁이 어려워진 것이지요.

이제 소비자의 필요를 찾아가지 않으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 때문에 산업디자인을 과거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기능과 품질을 충족시키기는데 산업디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산업디자인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지요.

<>사회=현재 우리 기업들의 산업디자인 수준은 어느정도입니까.

<>김 상무=동남아시아에서 우리상품의 소비자 만족도를 경쟁국의 것과
비교한 자료가 있습니다.

일본상품과 우리상품을 비교해보면 성능이나 기능등 품질면에서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브랜드 인지도도 크게 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은 많이 쳐지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우리를 1백으로 봤을때 일본은 1백30정도의 점수를 받아지요.

구체적으로는 제품 외형보다 보이지 않는 곳의 디자인이 떨어지는 것으로
지적됐습니다.

이 디자인의 차이가 상품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지고 있음을 당연합니다.

저희 회사가 조사한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색상 유행감각 등 순수 디자인
요소도 경쟁국 기업들에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디자인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만이 아니라 창의적인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때문으로 판단됩니다.

<>사회=그렇다면 산업디자인에 대한 투자가 경쟁력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 상무=물론입니다.

우리 기업들의 제품은 디자인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가격도 높게 받지
못하고 있으며 시장점유율도 낮습니다.

반면 선진메이커를 보면 디자인이 좋고 가격도 높습니다.

따라서 디자인에 투자해 상품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고
봅니다.

<>사회=중소기업들의 현실은 어떤지 중소기업들의 산업디자인 개발을 많이
맡고 계신 이승근회장께 들어 보겠습니다.

<>이승근 회장=중소기업들도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경영전략으로 연결할 만한 능력은 부족한 상태입니다.

중소기업 대부분이 산업디자인에 대해 막연한 기대만 갖고 있을뿐 어떤
식으로 이를 도입해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희 산업디자인 전문회사를 찾는 중소기업의 경영자들은 해외출장 등으로
안목이 높아 늘 최고 수준의 디자인을 요구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 수준에 도달하려면 생산라인과 조직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해결돼야만 합니다.

그런데 자기 실정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높은 수준만 요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오히려 작은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효과적일 때도
있습니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기업 이미지를 바꾸는 CI(기업이미지통합) 등도 상당한
성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업디자인을 도입하려면 경영컨설팅을 받아 조직등도 재정비해야
합니다.

<>사회=우리 산업디자인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산업디자인 교육현실은
어떻습니까.

<>강병길 교수=솔직히 말씀드려서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실에 교육계는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교수들이 연구와 행정 교육을 동시에 맡고있어 자칫 전문성이 결여될
위기에 놓여 있지요.

입시교육도 문제입니다.

구성과 데생능력을 기준으로 학생을 뽑다보니 대학에 들어온 이후 1~2년은
다듬어야 산업디자인이 뭔지 어렴풋이라도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산학연구도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미래의 디자이너가 될 학생들이 현장과 크게 동떨어진 교육을
받기 십상입니다.

물론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그동안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넘쳐나 대학이 안이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이공계열에서는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산학연구가 산업디자인
분야에서는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강 교수=가장 큰 이유는 대학 스스로가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는 점입니다.

투자보다 성과가 크다면 기업들은 제발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기업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대학은 드뭅니다.

기업들의 자세도 문제는 있습니다 대학의 연구가 쓸모없다고 하지만
대학생들의 작품으로부터 부분적이라도 아이디어를 얻는 기업은 상당히
많습니다.

기업들이 대학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요.

외국의 경우 프로젝트 발주서가 대부분 수백페이지에 달하는데 국내
기업들이 대학에 주는 발주서는 10여페이지가 고작입니다.

어쩌다 산학을 하는경우라도 이처럼 대학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생들은 나중에 자동차를 디자인하게 될지 액세서리를 디자인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들은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지요.

산업디자인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업이 이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생산과 마케팅 조직등 교육외적인 변수를 대학이 고려하기
어렵다고 보고 대학에 일감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회=국가경쟁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상품
경쟁력이고 상품경쟁력은 산업디자인에 크게 좌우됩니다.

따라서 산업디자인을 진흥하는 것이 상품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산업디자인을 진흥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 지 들어보겠습니다.

<>김 상무=우리나라와 주요 경쟁국인 일본을 비교하면 디자이너 인력면
에서는 크게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도 각 대학에서 우수한 인재를 많이 배출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산업디자인 관련 기반기술이 상당히 취약한 상태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창의적인 환경도 조성돼 있지 못합니다.

또 경영자들의 디자인 인지도도 아직 낮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디자인에 공격적으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결국 경영자들의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들이 산업디자인을 핵심 경영전략으로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사회=다행히 산업디자인을 키워야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는 상태
입니다.

이미 정부도 산업디자인 진흥정책의 일환으로 기반기술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요.

산업디자인 전람회와 GD(굿디자인)마크제도등의 시행이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정부가 힘써야 할 부분이 많을 것 같은데요.

<>이 회장=산업디자인 발전에 일조하고 있는 산업디자인 회사 육성도
시급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79개의 공인산업디자인전문회사가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나름의 특기를 갖고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못합니다.

그동안 전문회사를 다같이 취급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전공분야별로 특색있게 육성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디자인 전문회사들의 변모도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이 회장=그동안 산업디자인전문회사로 대표되는 민간 산업디자인계는
가전이나 자동차에만 지난치게 집중돼 있었습니다.

디자인 전문회사들의 경우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예를들면 문화상품개발도 전망이 있습니다.

실례로 세계최대의 잡화쇼인 "엔비앙테"에 올해는 한국업체가 10여개나
참가했습니다.

그 가운데는 쇼기간중 액세서리만 가지고 80만달러어치나 주문을 받은
업체가 있습니다.

저희 회사도 자체개발한 재떨이를 20만달러어치나 팔았습니다.

이처럼 독특한 상품이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강 교수=대학도 변해야 합니다.

기업이 산학을 하겠다고 판단하는 것은 투자효과가 있다고 생각할 때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대학마다 자기 노하우를 갖춰 기업이 스스로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기업도 대학에 할 수 있는 것을 요구해야 겠지요.

대학은 이제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가 돼야 합니다.

<>김 상무=산업디자인너는 창의성이 아주 중요시되는 직업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젊은 시절이 아주 중요하지요.

그런데 군복무가 산업디자이너들에게는 많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산업디자인을 육성하려면 산업디자이너들에게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밖에 관련산업 육성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소재와 모형산업등 디자인 기초산업이 함께 발전하지 않고는 산업디자인도
큰 변화를 모색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저도 한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한 유명한 외국 디자이너가 방한했을때 우리나라의 상품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상품개발주기를 반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그 말에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개발주기를 단축시키기 위해 기업들이 컨커런트 엔지니어링을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병길 교수=80년대말 일본의 미쓰이 그룹은 21세기에 그룹을 이끌고 갈
요소가 무엇인지를 테스크 포스팀을 꾸려 연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디자인 연구개발이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디자인이 기업의 경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산업디자인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입니다.

따라서 논의를 통해 얻어진 결론의 실천여부에 따라 앞으로의 양상은 크게
달라지리라고 봅니다.

<>사회=지난주에 국제산업디자인총회 유치를 위해 유럽에 다녀 왔습니다.

그곳에서 유럽 여러나라들도 최근 산업디자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투자를 늘려 나가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네덜란드는 디자인센터를 건설중이었고 핀라드는 헬싱키를 디자인 도시로
지정해 아예 도시전체를 산업디자인의 메카로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총선을 치르고 있는 영국은 보수당의 메이저총리와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가 각각 산업디자인 진흥정책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 정도였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김용준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