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그냥 친구같은 사이이고 또 여행은 즐거우려고 하는데 연하의
그것도 너무 어린 남자와 여행하는 것을 사람들은 흉봐요. 지코치의
자존심에 흠집을 내주지 않으려고요. 이런 상태가 더 편리하지 않아요?"

"맞아요. 나는 당신과 이렇게 비행기속에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요. 절대로 더 이상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숙녀님"

그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사랑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난 것을 하느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공인수 박사보다 자기에게 더 잘 어울리고 자존심도 세우면서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그는 아리바바의 하늘을 나는 담요를 타고 있는 것 같이 황홀하다.

지금 그는 김영신이 자기의 어머니같고 애인같고 마누라같다.

그는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는 천진한 스물일곱이었다.

결혼경험이 없는 남자의 허망한 환상을 믿는 거다.

"나는 사장님이 이혼하시는 것을 반대합니다. 싫어지면 이혼을 해서는
믿고 살 것이 너무 없잖어요? 이혼은 아주 마지막 순간에 선택할 문제가
아닐까요?"

그는 유식하고 가장 도덕적인 사고를 하는 남자로 어필되고 싶다.

사실 그는 더러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이런
도덕적 사고를 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개인적인 고민은 모른척 해요. 어차피 그것은 나의
프라이버시니까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깝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충고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무 자격도 없이 주제넘다고 생각하시지 마세요. 팔십노인도
어린아이의 말을 들을 것은 들어야 한다는 속담도 있잖아요"

김영신은 엷게 미소짓는다.

그의 사고방식이 너무도 건전하고 촌스럽다고 할 정도로 보수적인 것에
놀랐다.

그래, 도덕적인 것이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아- 그러나.

어제 페루의 낯선 리마의 카페에서의 그와 오늘의 그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

이것이 인간의 야누스적인 얼굴일까? 남자들의 수심이란 이런 것인가?
그 순간이 지나면 이렇게 달라지는가?

"어제는 미안해요. 지코치를 생리적으로 괴롭혀주어서. 그러나 우리는
짐승이 아니잖아요. 나도 성숙한 여자지만 여행의 그룹에서 완전히
독립될 때까지는 좀 더 참아요. 나는, 아니 여자들은 보통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는 섹스를 안 해요. 특히 나는 그래요"

영신은 자기가 참새처럼 재재거린다고 자조한다.

처음 만나는 상대의 행동은 뭔가 낯설고 신선한 것이 상식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