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패턴의 구조조정인가, 아니면 불황에 따른 일시적인 위축현상인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며 외국인들로부터 비웃음을 사온 한국인의
과소비 풍토.

한때 망국병으로까지 지목되던 우리 소비 행태가 최근 경기침체를 맞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백화점 호텔 고급음식점등 소비현장의 전분야에서 감지되고
있어 "과소비의 거품"이 걷히고 있는 것 아니냐는 예측까지 낳고 있다.

롯데 신세계 뉴코아 현대 미도파등 대형 백화점의 판촉부장들은 지난달
20일 끝난 봄 세일 매출실적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난 90년 정기봄 세일후 7년만에 처음으로 매출액이 전년대비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쳤기 때문이다.

특히 모피 여성정장 외제 가전제품등 고가품 매출은 전년대비 20%이상 줄어
"고가일수록 매출신장률이 높다"는 종래의 등식을 깨버렸다.

반면 E마트 프라이스클럽 킴스클럽과 같은 창고형 할인매장들은 "더 싼 것"
을 찾는 알뜰주부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백화점 세일기간중에도 뉴코아의 킴스클럽은 전년동기 대비 73.8%라는
경이적인 매출증가를 달성했고 E마트 창동점과 프라이스 클럽도 각각 32%와
15%씩 매출이 늘어났다.

할인점으로 발길을 돌렸더군요"(뉴코아백화점 관계자) 호텔도 상황은
마찬가지.

롯데프라자 리츠칼튼 르네상스등 유명 호텔들의 식당가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10%에서 최고 40%까지 떨어지고 있다.

경제계에 확산된 초내핍 경영으로 기업체들의 모임이나 각종행사가 크게
준 탓이다.

일부 호텔들은 주말 가족손님을 한팀이라도 더 끌어 당기기 위해 일식당
이나 중식당의 가격을 내리는 할인경쟁도 불사하고 있다.

의식변화의 조짐은 거리에서도 느껴진다.

주말 오후가 돼도 주택가와 아파트 주차장에는 평일과 다름없이 승용차들이
빽빽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휘발유값이 크게 오른탓이기도 하겠지만 단 몇 백미터 거리도 차를 몰고
가던 습성이 바뀌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반영하듯 올 1.4분기 휘발유 소비는 12년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서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다.

가전제품시장에서는 모델교체로 창출되는 신규수요가 크게 줄고 있다.

종전 같으면 신모델 출하를 계기로 구형제품을 버리고 새것을 사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러졌다는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반면 중고 가전제품등을 취급하는 재활용센터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은 "소비행태의 구조적인
변화다"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다" 등으로 아직 엇갈리고 있다.

"경기침체보다 더 큰 폭으로, 또 더 빠른 속도로 소비가 줄고 있다.
게다가 실업등의 요인에 의해 고성장과 고소득에 대한 기대감마저 상실된
형편이다. 따라서 현상황은 소비의 거품이 서서히 걷혀가는 구조적인 변화기
로 보여진다"(김성식 LG경제연구원책임연구원)

"95~96년의 경기과열에 대한 반작용에 가깝다. 경제난에 따른 불안감이
일시적인 소비심리의 위축을 초래한 것일 뿐 버블이 꺼지고 있다는 식의
확대해석은 어렵다"(이언오 삼성경제연구소이사)

이코노미스트들조차 최근의 소비행태 변화의 원인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같은 견해차와 관계없이 이세중변호사(생활개혁범국민협의회의장)
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너무나 헤펐던 우리들의 씀씀이 태도를 바꾸는
좋은 계기"다며 부유층부터 앞장서 소비구조를 선진국형으로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윤성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