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달라졌다는 소리가 많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놓는 정책건의에 정부당국은 물론 회원사들까지 속도를
맞추지 못할 정도다.

재계의 본산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싱크탱크로서의 기능도 이제 한껏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평이기도 하다.

전경련의 이런 변화를 주도하는 주역은 "전경련부터 기업마인드를 갖고
고객감동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손병두 상근부회장.

그는 "요즘 우리 경제의 위기 국면을 시장경제체제 확립의 전기로
활용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취임 2개월을 막 넘긴 손 부회장은 서울 여의도 그의 집무실에서 김기웅
산업1부장이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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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경남 진양 출생(41년)
<> 경복고,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졸업(64)
<> 미국 조지타운대, 메릴랜드대학원 수료(84)
<> 한양대 경영학 박사(90)
<>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이사(79)
<> 한국생산성본부 상무(85)
<> 동서경제연구소 사장(94)
<>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95)

<> 저서 : ''주식대중화와 자본시장 육성 방안'' ''중간관리자의 리더쉽과
노사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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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 후 전경련이 첫 직장이셨다죠.몇년만에 되돌아오신 겁니까.

<> 손부회장 =66년 공채 2기로 입사했다가 70년 5월에 퇴직을 했으니
만27년만이군요.

2년전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직을 맡은 것을 감안하면
25년 만이고요.

-그 당시와 비교하면 전경련의 위상이나 역할도 많이 달라졌겠습니다.

<> 손부회장 =그럼요.

그 때는 직원이 30여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한국경제연구원과
자유기업센터를 합하면 2백명이 넘어요.

위상도 엄청나게 높아졌지요.

당시에는 정부가 경제를 주도했기 때문에 전경련의 역할도 미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경련 공채 출신인데다 기업과 연구기관 등에서 쌓은 경험도 풍부해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서 적임자라는 평이 많습니다.

<> 손부회장 =더잘 해보라는 뜻에서 하시는 말씀이겠지요.

저로서는 전경련을 정말로 회원사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로 만들겠다는
각오입니다.

전경련 사무국의 고객만족, 더 나아가 고객감동경영을 실현하겠다고나
할까요.

-최근 노동법재개정 과정에서 손부회장께서 목이 쉬도록 정말 열심히
재계의 입장을 대변해 오셨습니다.

문제는 결과인데 도출된 내용에는 어느 정도 만족하십니까.

<> 손부회장 =솔직히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경련은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위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노동법개정에
참여했습니다.

국제규범에 맞는 노동법, 국가경쟁력을 높일수 있는 노동법을 만들려고
했지요.

뉴질랜드에선 최근 노동조합법이 없어지고 노동계약법으로 바뀌었습니다.

근로자집단 보다는 개별 근로자들의 사적 노사관계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게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거꾸로 간게 새노동법 아닙니까.

-그럼에도 민노총은 현재 노조가 없는 일부 대기업에 노조를 만들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나섰는데.

<> 손부회장 =민노총의 그런 움직임이 바로 시대를 역행하는 노동운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노동조합은 열악한 근로조건하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지금 노조가 없다는 회사들을 보세요.

이들 회사의 근로조건은 노조가 있는 회사보다 훨씬 낫습니다.

지금은 파이를 어떻게 나누느냐가 아니라 파이를 얼마나 키우느냐가
문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전경련이 우리 경제를 위해 목소리를 더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요즘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손부회장 =목소리를 높인다기 보다는 회원사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해
곧바로 건의할수 있는 체제를 갖춰야겠지요.

과거에는 보호해달라, 지원해달라고 호소했지만 이젠 우리 기업들도
달라졌습니다.

완전한 개방경제체제여서 정부의 특수한 지원도 불가능해졌고요.

따라서 기업들은 이제 자유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해 국제수준의 경쟁 룰
(rule of game)만 제공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현재 상태로 국내시장이 완전개방되면 규제를 받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규제를 전혀 받지 않게 될 외국기업들과 도저히 경쟁할수 없는 상태이거든요.

-자유기업센터를 별도 재단법인으로 발족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까.

<> 손부회장 =그렇습니다.

세계경제는 이제 누가 시장경제체제를 확고히 굳히느냐의 싸움으로
변했습니다.

시장경제의 룰을 여하히 작동하느냐가 경제발전의 관건이 됐습니다.

이를 홍보-교육하기 위해 자유기업센터를 만든 것입니다.

-제도에서 의식까지 바꿔야할게 한 두가지가 아닐텐데요.

<> 손부회장 =특히 소프트웨어인 의식 도덕 규범 윤리 등이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교통법규라도 운전자들이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기업들도 이제는 페어플레이 자세를 갖고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
게임을 지향해야 합니다.

국민들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를 갈라보는 시각을 버려야
하고요.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평등의식이 지나치게 강해 반(반)시장경제적인
요소가 많은 편입니다.

-반시장경제적이라면..

<> 손부회장 =기업들을 실상보다 훨씬 나쁘게 이해하고들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대기업과 가진자를 매도하는 풍토가 우리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조성돼있지요.

이런 환경에서는 기업, 나아가 경제는 물론 국가도 발전할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배고픈 것은 참는데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고요.

사촌이 땅을 산다고 배만 아파해서야 되겠습니까.

따지고보면 이것도 시장경제체제하의 경쟁원리의 기반이 너무 약한
탓일 겁니다.

-그게 하루아침에 고쳐지겠습니까.

<> 손부회장 =쉬운 일은 아니죠.미국의 경우도 헤리티지나 후버재단등
민간연구기관이 끊임없이 연구하고 주장하면서 국민들의 의식바꾸기에
맣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일반 대중만을 상대로 한 것도 아니예요.

예를 들어 판사들을 상대로 경제교육을 꾸준히 시켜오고 있습니다.

자칫 경제판례를 하나 잘못 만들면 나라경제 자체가 흔들리게 돼있다는
판단에서지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뷰캐넌교수가 한국에 왔을 때 만나보니 어차피
일조일석에 안되는 일이니 꾸준하게 시장경제를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기업이 우선 잘돼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데 공감합니다.

기업경영이 잘 안되면 당장 취업문이 좁아지고, 고용이 불안해지고, 증시와
정치도 위기에 빠지지요.

그런데도 국민들 사이엔 반기업감정이 너무 팽배해있는 느낌입니다.

특히 대기업은 무조건 악이고 중소기업은 선이라는 식의 잘못된
2분법도 많구요.

<> 손부회장 =국민의 의식뿐 아니라 정부도 판단을 잘못 하고 있어요.

세계적인 변화흐름에 역행해 기업의 역할을 경시하고 있지요.

복지문제를 예로 들어 볼까요.

국가가 전적으로 보장해주는 복지개념은 이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가 이미 망했고 사회주의와 비슷하게 국민들의 세금을 거둬 나라가
복지를 책임져주던 유럽의 복지국가들도 거덜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시장경제로 체제를 전환하고 있지요.

그런데도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어요.

오히려 청와대에 사회복지수석을 만들어 국가차원의 복지를 강화하려
하고 있지요.

-문민정부 4년간의 개혁이 시장경제원리에 상충되는 부분도 많았다는
지적입니까.

<> 손부회장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문민정부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어놓은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시장경제의 기본이념은 사유재산제도입니다.

그런데 이 정부 초기에 뭐라고 했습니까.

가진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겠다고 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됐나요.

사람들이 저축을 하지 않게 된것 아닙니까.

복지는 이제 웰페어(welfare)가 아니라 워크페어(workfare)로
바뀌었습니다.

고용을 줄이면서 국가가 할수 있는 복지는 없다는 겁니다.

미국 클린턴대통령도 후보수락연설에서 "일할수 있도록 해주는 복지"
(welfare to work)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가진자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하니 누가 자기 재산을 늘리는 일에
노력을 하겠습니까.

나아가 누가 기업하려고 하겠습니까.

-문민정부 초기 2년간 청와대를 출입한 경험으로도 그런걸 느꼈습니다.

대통령 주변의 측근들이 의외로 기업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특히 정치인 출신들은 더욱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 손부회장 =분명한건 지난 4년동안 우리 기업인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는 겁니다.

내로라 하는 대기업 총수들이 검찰에 불려가는 등 시련의 연속이었지요.

어느 토론회에 갔더니 한 발표자가 우리 기업은 전부 정경유착으로
성장해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나도 청춘을 기업에 바친 사람인데 그러면 나는 뭐냐고요.

새벽별 보고 나와서 통행금지 단속에 걸리지 않으려고 허겁지겁 집에
뛰어들어가곤 했던 청춘은 어디서 보상받느냐고도 했지요.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 같은 이는 새벽 3시에 출근해 중동에서 오는
팩스를 받았다지 않습니까.

기업인들과 근로자들의 피와 땀이 이만큼 우리 경제를 발전시켰건만
정치인들은 기업을 폄하(폄하)하기만 했지 애정을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 편견이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금융개혁과정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 아닙니까.

<> 손부회장 =기본적으로 금융산업도 시장경제원리에 맡겨야 합니다.

경쟁원리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98년 이후엔 1백% 자본시장이 개방됩니다.

외국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올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는 장벽이 있어서는 절대
안돼요.

재계순위 1~5위 그룹은 안된다고 하면 6위 그룹은 왜 될수 있나요.

주인있는 은행들 보세요.

신한 하나은행등 주주가 책임경영을 하는 곳은 최근의 잇따른 대형금융
사고에도 하나도 물리지 않았잖아요.

-은행이 개별기업의 사금고화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정부의 논리인데.

<> 손부회장 =그것도 말이 안돼요.

제2금융권을 예로 들까요.

삼성생명을 보세요.

삼성생명이 과연 삼성그룹만을 고객으로 영업하고 있습니까.

진입은 열어주고 대신 자산운용준칙을 엄격히 적용하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농구시합도 모두를 뛰게 해놓고 3초 룰이다, 워킹이다 하는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지 너는 키가 크니까 시합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되지 않아요.

그러면 키 큰 사람은 시합에 뛰기 위해 키를 낮출 수밖에 없지요.

말이 됩니까.

-특히나 올해는 연말에 대통령선거가 있어 기업인들이 더 걱정을
하더군요.

정치인들은 한보부도 등을 예로 들면서 대기업들을 매도할 것이고, 또
선거비용은 결국 기업의 지출부담이 될 텐데..

<> 손부회장 =그래서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세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요.

21세기 비전을 마련하는 작업, 새정부가 실현할수 있는 5년짜리
경제액션플랜, 돈 안드는 선거를 치르기 위한 방안 등이 그것입니다.

-어쨌든 경제는 위기로 치닫고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경제회생의 묘안은 없나요.

<> 손부회장 =우선은 정부가 경제정책의 우선순위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현재로선 국제수지방어가 급선무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국제적인 신용이 급격히 추락하기 때문이지요.

예산 8조원을 금융으로 돌리면 50억달러 정도 국제수지 개선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정부도 빨리 기업마인드를 도입해야 합니다.

-시장경제가 뿌리내리면 우리 경제도 희망이 있다는 소신을 갖고 계신듯
합니다.

<> 손부회장 =작년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몽페르낭 소사이어티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자유시장경제주의의 거목인 하이예크가 운영하는 것인데 부끄럽게도
한국에서는 나와 공병호 박사 둘만 참석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국가와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에서도 수많이
사람들이 왔더군요.

체코에서는 총리까지 참석했어요.

정말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지도층의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이나 관심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를 알수 있었습니다.

-자유시장경제가 말만큼 쉬운게 아니고 또 오해도 많아 우리나라에선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 손부회장 =자유기업센터를 만든 목적도 그것이지요.

일전에 방한했던 뉴질랜드의 더글러스 총리는 한국은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왜냐고 물었더니 9%대(당시)의 높은 경제성장을 하는데 누가 시장경제
체제로 개혁하자고 한다고 따라오겠느냐는 설명이었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요즘이 시장경제에 대한 인식을 바꿀수 있는
적기인지도 모르죠.

이렇게 구조적인 어려움을 노출했을 때 우리 경제체제를 완전 시장경제
체제로 바꾸는 명분이 생겼다는 겁니다.

지금이 바로 산업구조와 국민의식의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정리=권영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5월 2일자).